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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양심과 열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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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양심과 열등감

입력
2010.12.0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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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재산이나 명예, 타고난 외모 등에서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느낀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 과장된 언행이나 인생에 대한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감정에 빠지게 된다. 열등감에 빠지면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열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열등감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지만 꿈과 야망의 원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들은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열등감이 없다면 더 이상 성취해야 할 바를 보지 못한다.

우리 시대의 삶에서 대부분의 열등감은 돈과 명예, 수려한 외모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가치들에서 비롯된다. 남보다 더 많은 재산과 명예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마음과 시간을 몽땅 소비하며 산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 만큼은 남들보다 더 가지려 하지도 않고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남들과 비교해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철학자 데카르트는 에서 인간의 이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기에 아무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은 누구나 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하기 때문에 고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성은 모두가 공평하게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성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시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양심과 이성은 다르지만 둘 다 우리가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지적은 우리 시대의 양심이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이성에 대해 결핍을 느끼지 않듯이 양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결핍을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성이든 양심이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양의 많고 적음을 측정할 수 없을뿐더러 위선이나 가식된 언행만으로 그 부족함을 얼마든지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심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심각한 원인은 그 부족함을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낄 수 없고 열등감과 싸워 이기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법치 사회에서 법을 준수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본사회의 이해관계에서 승자가 되는 것만으로 양심에 관한 고민은 끝이고 더 이상은 낭비다. 적을 모르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듯이 양심에 관한 한 내가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장님의 어둠이 두렵다.

에서 법가를 비판하는 공자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리면 법의 심판을 어떻게 피해갈지에 대한 요령에 빠지게 되므로 예(禮)로써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고 한다. 예로서 사람을 다스리면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게 되며 각자가 수치심을 느끼면 자발적으로 양심을 지키게 되고 저절로 풍속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래 살아 온 유교 선비사회의 큰 장점은 인간의 양심에 대해 열등감을 부추기는 정신에 있다. 학문을 닦고 선비가 되는 일은 양심을 확충하여 남보다 더 큰 인격에 이르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 드는 일이다.

양심의 부족함을 보는 내면의 눈을 가지고 살아 왔던 우리의 오랜 전통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지금의 학문은 양심의 부족을 보는 눈을 뜨게 하여 열등감에 빠트리는 역할을 잊고 있다. 돈과 명예를 놓고 경쟁하듯 내가 남보다 더 양심적이기 위한 내면의 경쟁에 몰두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조성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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