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길은 다를지 몰라도, 둘 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인간의 삶에 있으니까. 그보다는 목민관(牧民官)으로서의 자질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정약용의 까지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역 수장인 시장은 출신배경이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 앉았건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관료이다. 그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지역주민을 우선 보살피고, 그들의 어려움을 발벗고 해결해주는 것이다. 지방자치제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연평도 주민들 위해 뭘 했나
그러나 북의 연평도 포격 후의 송영길 인천시장의 언행은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연평도 희생자와 주민들에게는 돌 맞을 소리겠지만, 송 시장 입장에서는 능력과 사랑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시장보다는 여전히 정치인 냄새가 풀풀 나는 이미지도 씻을 수 있었다.
연평도 주민들에게 북의 포격은 전쟁이었다. 집이 파괴되고, 생명이 위태로워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란민 신세가 된 그들에게 필요한 시장은 대뜸 첫마디가 우리 군의 훈련이 북의 포격을 자극했다는 식의 잘난 척하는 정치인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주민들을 따뜻이 위로하고, 머물 곳을 마련하고, 하루빨리 되돌아갈 수 있도록 복구에 몸과 마음을 다하는 참 지역일꾼일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북한 주민이 불쌍해서 쌀을 보내겠다던 휴머니스트가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머뭇거렸고, 핑계를 댔다. 1,500여명의 피란민들이 찜질방을 전전하고, 갈아 입을 옷이 없어 쩔쩔매고 있는데도 정부 타령만 했다.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고 하자. 적어도 지역주민의 생활을 책임진 시장이라면 이런 때야말로 정부를 향해 얼굴 붉히고, 목소리 높여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일의 순서도 거꾸로다. 당장 먹고 자는 일이 절박한데, “정부에 서해 5도 지원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멀고 먼 근본대책 타령이다. 누구보다 철저히 민생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도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나. 아니면 이런 상황이 귀찮거나, 한가하게 트위터에 정세분석이나 하고 화염에 그을린 소주병을 들고는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농담할 만큼 ‘강 건너 불’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한 기부자의 돈으로 연평도 학생들에게 옷을 사주고는 자기 업적인 양 생색내는 그가 더욱 볼썽사납다.
그의 언행에 일일이 꼬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 춘추시대 개자추(介子推)는 “말이란 몸의 무늬”라고 했다. 무심코, 혹은 농담으로 내뱉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바탕을 드러내 준다. 사고가 언어를 통제하기도 하지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실언조차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특히나 지도자들의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잠재의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이번 북의 연평도 포격을 놓고도 정치인들의 웃지 못할 실언들이 쏟아졌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보온병 두 개를 들고 포탄이라고 하자, 옆에 있던 육군 중장 출신의 한 의원은 친절하게도 포탄의 종류까지 말했다. 물론 무지의 소산이다.
거친 정치적 언어 삼가기를
그러나 그들 언행의 전후 맥락을 보면, 과욕과 정치적 계산이 함께 빚어낸 코미디이다. 노자 의 가르침처럼 ‘크게 말 잘하려다 더듬은 꼴’이 됐다. 송영길 인천시장의 언행에도 정치적 계산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진보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의식해 북에 대한 비판과 피해주민 지원을 소홀히 한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만 더 충고하자. 트위터 세상이다. 정치인, CEO들까지 소통이 만능인 양 난리다. 그러나 적어도 양식 있는 사회 지도층이라면 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거친 언어로 내뱉는 경솔한 짓은 삼가야 한다. 그 역시 자신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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