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센크 등 지음ㆍ문병호 등 옮김
세상의거울 발행ㆍ384쪽ㆍ1만5,000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천수답 농경시대에 생겨난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떠돈다. ‘재화의 유한성’이란 그럴듯한 논리로 치장한 이 유령은 “가난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는 법”이라고 속살거리며 사람들로 하여금 빈곤 문제를 애써 외면하게 만든다.
<천의 얼굴을 가진 빈곤> 은 이 유령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빼든다. 오스트리아의 빈곤 문제 연구자이자 빈곤 퇴치 활동가인 저자들은 이 풍요의 시대에 빈곤층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 물질적 재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재화의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천의>
이 책은 아동 빈곤, 빈곤의 대물림, 빈곤과 질병, 빈곤과 일자리 등 빈곤 문제와 관련해 제기되는 주요 이슈들과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들이 직접 면담한 사례들을 통해 유럽 각국 빈곤층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성급한 독자들은 해결책에 먼저 눈이 가겠지만, 부자대륙 유럽의 상대적 빈곤 문제에 관한 처방들이 모두 우리 실정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빈곤의 형상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빈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된 현상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재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할 정도로 넘쳐난다, 문제는 공정한 분배다.” 복지후진국에서 세금폭탄이니, 복지병이니 하는 어이없는 말을 무시로 입에 올리는 이들에겐 쇠 귀에 경 읽기겠지만.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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