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3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한 것이다.'
3일 삼성 사장단 인사가 발표되자 재계에서 나온 총평이다. 실제로 이날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ㆍ에버랜드 전무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이 회장이 이 부사장을 삼성의 가장 큰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영 전면에 내 세운 것은 이 부사장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며 삼성의 미래를 준비하란 특명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지난 3월 경영에 복귀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한 이 회장의 다급함도 반영됐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계속 전체 경영의 중심으로 삼성을 총괄하겠지만, 이 부사장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큰 딸인 이 전무가 삼성전자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지만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3세 경영 체제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날 인사에선 빠졌지만 이 회장의 작은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ㆍ제일기획 전무의 역할과 비중도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유독 발탁 인사가 많았다는 점도 이러한 3세 경영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 회장이 그룹 내 젊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배치함으로써 3세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는 얘기다.
이번 인사에선 특히 지금까지 삼성 인사에선 볼 수 없던 파격들이 이어졌다. 먼저 9명의 신임 사장 승진자중 부사장이 된 지 1년도 안 된 이가 5명이나 됐다. 예전에는 통상 부사장이 된 뒤 3년은 넘어야 사장 승진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연공과 서열을 중시하고 조직의 안정을 꾀하던 삼성에선 이러한 절차와 시간이 당연시됐다. 그러나 만성적인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쇄신 인사가 절실하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이와 관련 후속 인사의 폭도 커질 전망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부사장 1년차가 사장이 되는 상황에서 부사장 2년차 이상이 계속 남아있긴 힘들 것"이라며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의 각 계열사 사장은 40여명, 부사장은 80여명으로 알려졌다.
외부에서 들어 온 인재를 중용하는 점도 주목된다. GE 출신의 최치훈 삼성SDI 사장이 삼성카드 사장으로 영전하고, AT&T 출신의 우남성 부사장과 IBM 출신의 고순동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 삼성이 앞으로는 글로벌 기업의 우수 인재에게 더욱 문호를 넓힐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삼성 인사에서 놓쳐선 안 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혁신통의 약진'이다. 삼성SDS의 신규 사업을 개척해 온 고순동 부사장과 삼성토탈 공장장으로 경영 혁신을 주도해 온 손석원 부사장이 각각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나왔던 평가가 '재무통의 약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엔 틀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이는 이번 인사의 핵심 키워드인 '미래'와 '변화'에 재무통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과거에는 재무적 안정이 중요했지만 점점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에 발 맞춰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실질적 변화를 이끌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삼성도 이번 인사에 대해 "21세기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그룹 최고 경영진의 진용을 재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삼성의 비전을 이끌 젊고 혁신적인 인물을 중용하고 신성장동력을 구축한 인재를 대거 발탁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삼성은 모든 부문에서 질적인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단순히 정기 인사라는 차원을 넘어 삼성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바뀔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며 "젊고 미래 지향적인, 혁신과 창조의 삼성이 새로 출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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