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 경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이다. 포르셰, BMW, 지멘스 등 대표적인 기업들이 두둑한 연말 상여금을 계획하고 있고 백화점 등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대박을 기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기업의 인력 스카우트 전쟁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독일은 선진국 중 글로벌 금융위기 탈출을 가장 먼저 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자의 수렁에 빠져있는 유로지역 경제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최대 국가이기도 하지만, 위기 이후 보여준 경제성과가 그야말로 눈부시기 때문이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통일 이후 가장 높은 전기대비 2.3%를 기록하면서 금년 전체로는 4%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1% 내외이고 같은 기간 유로지역의 성장률 전망이 1%대 중반임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준임에 틀림없다.
실업률은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유로존 평균실업률이 위기 이전보다 3%포인트나 높은 10%까지 상승하고 미국도 4%대에서 1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오른 반면, 독일은 오히려 하락하여 6%대를 나타내고 있다. 실업자는 18년 만에 가장 적은 200만명대로 줄어들었다. 벤츠, BMW 등을 내세운 수출이 중국 등 신흥시장국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GDP 대비 6%대까지 확대되었다.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한때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찬양을 들었던 독일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기침체가 거듭되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과도한 복지제도, 경직적인 노동시장 등 구조적 문제가 내재된데다 1989년의 갑작스런 통일이 독일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극심한 침체를 경험하였다. 1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이 유로지역에 미치지 못하는 1%대 초반에 머물렀으며 특히 2001~05년 중에는 0.6%에 불과하였다. 낮은 성장에 따라 실업률은 10%를 상회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경상수지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적자를 지속하였으며 이후에도 몇 년간은 소폭 흑자에 그쳤다. 한 가지 위안은 정부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하였다는 것이다.
독일이 이렇게 우등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보다 착실한 구조개혁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한 것에 있다. 독일 정부는 조급하지 않게 사회보험 및 노동시장 개혁, 제조업 위주의 경쟁력 강화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또한 옛 동독지역의 낮은 임금수준 및 유럽통합에 따른 수요확대 등을 경쟁력 회복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이나 최근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일랜드, 스페인 등과는 달리 약 20년 동안 주택가격이 연평균 1% 상승에 그치는 등 낮은 물가상승률은 12%에 이르는 높은 저축률, 가계의 건전한 재무구조로 연결되었다. 튼튼한 재정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과감한 재정지출을 할 수 있었다. 특히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대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며 노동자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희생을 감내하며 동료들의 해고를 막았다.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로 내수침체를 막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기가 수습된 이후 경기회복세에도 빨리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경우 독일만 홀로 좋은 시절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독일 경제의 회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당분간 지속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높은 성장세로 늘어난 기업이익이 고용 확대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언론에서는 인색하기로 유명한 독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수출에서 시작된 경기회복이 내수로 선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도 독일의 소비증가에 따른 수입증가로 역내 불균형이 완화되고 나아가 그리스 등 주변국의 재정적자 해소에도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경제 무대에 화려하게 다시 등장한 독일의 경제회복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긍정의 울림이 있기를 바란다.
최규권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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