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 바야르종 지음ㆍ강주헌 옮김
갈라파고스 발행ㆍ352쪽ㆍ1만3,500원
조작된 여론, 온갖 프로파간다, 광고의 속임수, 통계의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기술한 책이다. 프랑스어로 씌어진 원서 제목은 ‘지적인 자기 방어를 위한 짧은 강좌’. 책을 쓴 노르망 바야르종은 캐나다 퀘벡대에서 교육학사와 교육철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지적인 자기 방어 능력을 키우는 것도 시민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행동주의자다.
책은 비판적 교양인이 되기 위해 도구적 이성을 단련하는 법을 5가지 영역으로 나눠 소개한다. 언어, 수학, 심리학, 과학, 미디어가 각각의 영역이다. 상대방의 말 속에 나를 속이려는 의도가 없는지, 그래프가 어떤 착시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과학으로 포장된 정보가 점집의 수정구슬보다 믿을 만한 것인지, 미디어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그리고 나 자신의 기억이란 것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성찰하는 방법을 다양한 실전 사례를 통해 훈련시킨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개념을 정의하는 틀인 유개념(genus)과 종차(differentia)의 사용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지를 보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진 촬영이 오랫동안 금지됐다. 이슬람 율법이 인위적인 형상의 제작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정을 찾기 위해서는 항공사진이 반드시 필요했고, 1970년대 이븐 사우드 국왕은 율법학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설득했다. “사진은 인위적으로 만든 형상이 아니라 알라의 창조물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빛과 그림자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리고 저자는 묻는다. “테러, 낙태, 전쟁, 대량학살, 마약 등등의 단어에서 한쪽의 정의만 사용할 때 어떤 결과가 닥칠지 생각해 보라.”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5장 ‘미디어: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꼼꼼하게 따진다’이다. 1990년 10월, 쿠웨이트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나이라라는 15세 소녀가 워싱턴의 미국 하원 인권위원회에 출두했다. 그는 이라크의 공격으로 312명의 아기가 숨졌다고 증언했고, 이를 생중계로 지켜본 미국 시민들의 여론은 급격히 걸프전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것은 힐앤놀튼이라는 홍보회사가 진행한 사기였음이 밝혀졌다.
저자는 이 분야의 선구자인 노엄 촘스키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훈련법을 소개한다. 뉴스를 분석하고, 출처를 확인하고, 정치철학을 공부하라는 이런 훈련법은 고될 수 있으나 저자의 말대로 “지적인 자기방어를 위한 황금 규칙”이다. 범람하는 거짓 정보 속에 생각의 주인으로 살아가고픈 현대인을 위한 매뉴얼로, TV 리모컨 곁에 둘 만한 책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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