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없어야 수급 대상' 410만명 복지 사각지대에… 법 개정안은 국회서 낮잠
"결혼 뒤 6년간 해마다 신청을 했지만 시댁 재산과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매번 안 됐습니다. 자식이 돼 보태드리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정모씨ㆍ42ㆍ여ㆍ뇌성마비 1급)
"수입이 200만원 남짓인 아들은 5,500만원 전셋집에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암 투병중인 어머니 병원비까지 감당하기도 벅찬 아들에게 나까지 부양할 능력이 있을까요."(이모씨ㆍ72ㆍ남ㆍ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선정기준이 까다로워 실제로는 빈곤층에 속하는 데도 국가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기준 월 133만원) 이하이면서 부양해 줄 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 능력이 없어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자녀의 지원 없이 궁핍하게 사는 노인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며 "빈곤한 국민을 책임지기 위해 만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오히려 '가족해체법'이라는 오명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일용직 노동자인 윤모(52)씨가 여의도공원에서 "내가 살아있으면 장애가 있는 아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극단적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에 가로막혀 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38명은 2일 청와대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이들을 복지 사각지대에 내모는 가장 큰 진입장벽"이라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소득은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데도 등재된 재산 현황이 정해진 기준에 맞지 않아 수급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문제다. 소득이 없는 모녀가 10년 된 봉고차 한 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는 일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빈곤층이지만 수급자가 되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2006년 329만 명에서 2007년 368만 명, 2008년 401만 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기준으로는 41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4%나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맹점 때문에 소득기준으로만 수급자를 선정하는 내용의 개정안(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에서 상정조차 되지 않은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면 연간 4조5,000억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데 정부 재정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며 "사회적 여론을 수렴하면서 부양의무자 판정 기준을 완화해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20여 개 정치ㆍ시민단체는 지난달 16일부터 종로구 조계사 옆마당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