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전투구’로 흘러버렸지만 현대건설 인수ㆍ합병(M&A) 과정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말들이 많다. 한 마디로 전례가 없는 ‘참 이상한 M&A’라는 것. 자칫 M&A시장 자체를 크게 위축시킬 소지도 크다는 지적이다.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M&A”
이번 M&A가 통상의 ‘룰’에서 벗어났다고 지적 받는 대목은 크게 세가지. 첫 번째는 ‘자금출처조사 논란’이다.
현재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계좌에 예치해뒀다고 제출한 인수용 자금 1조2,000억원의 성격규명과 이를 증빙하기 위한 자료제출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맞서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채권단은 이 돈의 실체와 인출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적법한 ‘자기자금’으로 인정했으나 현대차 쪽으로부터 “출처가 의심쩍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현대그룹은 이를 “대출금”이라고 밝혔지만, 이번엔 채권단까지 나서 “그럼 계약서를 내 보이라”며 따지는 형국이다.
한 증권사 M&A담당자는 “통상 양해각서(MOU) 체결 전까지는, 우선협상대상자 심사 때 정해진 기준을 통과한 자금에 대해선 성격을 따로 묻지 않는데 이번엔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실체가 있는 돈’이란 기준을 통과했다면 그 돈이 빌린 돈인지, 훔친 돈인지는 당장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만약 돈에 문제가 있어 보이면 MOU 후 실사나 본계약 단계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되는데 이번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이른바 ‘MOU 연기’를 둘러싼 갈등. 자금출처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자 채권단은 원래 예정했던 ‘우선대상자 선정 후 5영업일내’를 넘겨 9영업일만에 MOU를 맺었다. 현대그룹에 자금출처에 대한 소명을 추가 요구하고 거절당한 이후였다. 모 시중은행 M&A 담당 부장은 “MOU는 통상 거래의사를 재확인하고 우선대상자에게 정밀실사를 허용하는 절차이지 계약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채권단이 뒤늦게 여론악화를 이유로 추가 소명을 요구하며 MOU를 미룬 것은 분명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매각 당사자들이 비밀유지협약과 이의제기 금지조항을 어겼다는 정황도 특이점으로 지적된다. 현대그룹은 최근 “현대차가 채권단의 공정한 심사로 이뤄진 결과에 계속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이의제기 금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책금융공사가 비록 국회요구라지만 스스로 우선대상자 채점기준을 공개한 것도 비밀유지협약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지나치게 “법대로 하자”만 반복중인 현대그룹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다해도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상식적인 의심에 기반한 국민적 관심을 감안한다면 현대그룹이 무조건 ‘의무가 없다’고 버티기보다 스스로 나서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향후 M&A 크게 위축될 것”
전문가들은 어쨌든 이번 인수전 파행이 향후 M&A에도 깊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적 계약인 M&A는 기본적으로 가격 우위를 점하는 매수자에게 기회를 주는 딜”이라며 “승자의 저주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이해하지만 철처하게 경제논리가 적용돼야 할 M&A가 이번처럼 감정 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 하이닉스 대우조선 대우건설 등 M&A시장에 나올 대형기업은 한 두 개가 아니다”면서 “현대건설 사례가 전례가 돼 이들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된다면 매번 큰 논란이 벌어지고 결국 M&A자체가 깨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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