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답게 고즈넉한 변산 개암사
세밑 마음을 다독이는 여행길, 고요함이 깊은 정말 ‘절간 같은’ 절을 찾아 나섰다. 문득 머리에 떠오른 곳은 전북 부안의 개암사다. 시끌벅적한 변산국립공원 안에서도 유유히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호젓한 길로 차를 몰아 도착한 개암사. 마침 절 마당에선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사찰 살림을 맡아 하는 공양주와 신도 한 분이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여느 사찰이면 천여 포기가 넘었을 텐데, 이곳에선 200포기만 담근단다. 절에 계신 스님도 적고, 절을 찾는 신도도 그리 많지 않아서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공양주가 소금을 버무린 통무를 독에 묻는다. 동치미를 담그는 중이란다. 이렇게 먼저 무를 넣고 3일 후 황태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내 식혀선 그 독에 붓는다고 하신다. 색다른 동치미다.
사찰에선 대웅전과 응진전 정도가 볼만한 건물이다. 응진전은 지금 복원공사 중이다. 개암사 절 마당에 서서 대웅전을 올려다 봤다. 참 기가막힌 곳에 들어 앉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웅전 지붕 위로 우금바위가 우뚝 솟았다. 이 절을 위해 솟은듯한 모양이다. 우금바위와 대웅전의 조화가 이뤄낸 그 아늑함 그 넉넉함이란.
개암사는 백제 때 처음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그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들이 사찰 주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전국의 유명 고찰이 있지만 개암사만큼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품고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대웅전 안에 14마리 용과 7마리 봉황이
우선 대웅전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 지금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대웅보전 현판이 건물에 비해 유난히 작다. 현판 뒤 2개의 도깨비 모양 귀면상을 가리지 않기 위함이다. 대웅전 정면에 귀면상을 내건 사찰은 흔치 않다.
대웅전 안에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 보면 또 한번 놀란다. 오밀조밀한 조각 전시장 같다. 정교하게 조각된 용들이 몸부림치고, 연꽃 위에선 봉황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부처 머리 위의 닫집의 화려함도 놀랍다. 그 작은 닫집 안에 5마리의 용이 꿈틀댄다. 대웅전 안에 전체 용이 14마리, 봉황이 7마리란다. 손으로 꼽아보며 세어보지만 한 두 개가 보이지 않는다. 불심이 약해서일까.
변산의 호랑이 등긁개
대웅전 바로 옆에는 호랑나무가시 한그루가 서있다.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뾰족한 잎은 푸름이 짙다. 생김새로만 보면 절과는 생뚱맞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하다. 부안은 호랑나무가시의 북방한계선. 부안 도천리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됐다.
옛날 변산엔 유독 많았던 세가지가 있었는데, 호랑이, 도적, 스님이 그들이었다. 지금은 계화, 줄포가 간척돼 육지와 많이 붙어있지만 원래는 커다란 혹처럼 바다로 돌출돼 나와있던 땅이 변산이다. 외진 이곳까지 들어온 이들이 그냥 그곳에 암자를 짓고 스님을 자처했다고 한다. 많을 땐 암자 수가 1만 개를 넘을 정도로 스님이 많아 아예 변산에 목탁 염주를 파는 시장이 열릴 정도였단다.
소 천엽 속처럼 깊다는 변산의 골골엔 도적도 많이 숨어들었지만, 호랑이도 적지 않았다. 산속의 호랑이들이 등이 가려우면 내려와 이 호랑가시나무 이파리에 등을 긁어댔다고 해서 변산 사람들은 이 나무를 ‘호랑이 등긁개’라고 부른다.
백제의 한과 원효의 다독임
개암사는 변한의 왕궁 터였다. 백제 무왕 때 처음 사찰이 지어졌고, 삼국이 통일된 뒤 원효와 의상이 찾아와 중창했다. 지금의 대웅전은 조선 인조 때 새로 지어졌다.
원효와 의상의 흔적은 절을 내려다 보고 있는 우금바위에 새겨져 있다. 우금바위는 백제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난 뒤,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 왕자 부여 풍은 백제유민을 이끌고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다. 그 마지막 근거지가 개암사를 품고 있는 주류성(우금산성)이다.
4년에 걸친 백제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역사에서 백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원효와 의상이 마지막 백제의 땅에 와 개암사를 중창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암사를 안내한 부여군청의 황은성씨는 “백제 유민의 망국의 한을 위로하고 그들의 패배의식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삼국의 물리적인 통일이 아닌 정신적인 통일을 이루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암사는 백제의 마지막이자 삼국통일의 진정한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우금바위의 복신굴
개암사 응진전 뒤로 난 산길을 따라 우금바위로 올랐다. 산길이 수다스럽다.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다. 20여 분 오르니 우금바위 턱밑에 도착했다. 바위 중간에 커다란 석실이 자리했다. 백제부흥을 이끌던 복신이 머물렀다고 해서 복신굴로, 또 원효가 암자를 지었다고 해서 원효방으로 불리는 공간이다.
우금바위의 또 다른 굴인 베틀굴을 지나면 정상에 오르는 밧줄을 만난다. 높이 3m 정도의 90도 벼랑을 외줄 하나에 의지해 올라야 한다. 용기 내 밧줄을 잡고 바위를 탔다.
정상에서의 시야는 드넓었다. 푸른 숲 속 한가운데 개암사가 다소곳이 들어앉아있다. 왼편 넓은 평야는 곡식을 다 베어냈음에도 누렇게 반짝이며 풍요로움을 뽐낸다. 서쪽에는 변산의 산자락이 너울너울 물결을 친다. 개암사를 감싼 너른 품안, 시원한 바람이 맴도는 이 공간에 재미난 옛이야기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다. 부안=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