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학생들, 그리고 이공계 출신의 회사원들 정말 글 못 씁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죠. 그런데요, 몇 시간만이라도 글쓰기를 배우고 나면 놀랍도록 바뀝니다. 그 동안 한번도 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 거죠.”
원자력 업무에 전념해 온 공무원에서 2003년 글쓰기 강사로 변신한 임재춘(62)씨. 크리스마스 때까지 단 3일만 빼고 모두 강의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다. 서울 대전 부산 대구 등 전국을 누빈다. 대학 특강에서 ‘자기소개서 인사담당자가 100% 채택하는 법’과 같은 선정적인 플래카드가 붙기라도 하면 대형강의실에는 빈 자리가 하나 남아나지 않는다. 학원가의 스타 강사 못지않다. 강사료 수입만 월 1,000만원 이상. “내가 과거에 왜 공무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농 삼아 웃는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임씨는 1973년 교육과학기술부(당시 과학기술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91년 원자력국장을 지내던 당시 장관의 눈 밖에 나서 외부 기관으로 파견을 나가게 된 것이 오늘날 글쓰기 강사 임재춘을 만든 계기였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선정 문제가 현안이었던 때였어요. 제가 주무 국장으로서 당시 김진현 장관께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를 했지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는 바로 원자력국장에서 ‘잘려서’ 지방으로 내쫓긴 겁니다.”
그 때만 해도 이유를 몰랐다. 그 일을 가슴에 담아두었던 그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김 전 장관에게 연유를 물었다. 그 답변이 의외였다. “김 국장을 비롯한 기술직들은 한마디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 보고서를 한번 봐라. 주어가 죄다 사물이 아닌가?” 임씨는 이 말을 듣고 자기가 쓴 보고서를 들춰봤다. 그랬다. 주어는 모두 폐기물, 부지, 안전성이었다. 폐기물처리장 확보를 위해 ‘교육과학기술부가’ 뭘 하겠다는 문장도, ‘주민들이’ 안전성 문제를 우려할 수 있다는 문장도 없었다. 사물을 주어로 삼아 객관성을 유지하는 듯한 허울을 씌웠을 뿐 누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긴지 모호하기 그지없는 공허한 문장들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뼛속 깊이 절감한 임씨는 그 때부터 글쓰기 전략과 요령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1999~2002년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사를 지내며 원내 연구원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다. 김 전 장관을 통해 깨달은 교훈을 임씨가 연구원들에게 강의하자 반응은 예상 밖으로 뜨거웠다. 그 때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2003년 북코리아 발행)를 써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임씨에겐 대학과 기업의 강의 요청이 몰리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은 차장 이상 간부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임씨의 강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고, 동아대와 영남대에선 이공계 필수교양과목으로 글쓰기 강좌를 개설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직장인에게 핵심 경쟁력이라고 임씨는 강조한다. 멋들어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읽는 사람이 명확히 알기 쉽게 쓰는 것이 그가 강조하는 기술글쓰기(Technical Writing)의 핵심이다. 계획서든 제안서든 보고서든 심지어 언론기고문까지 다 마찬가지다.
또한 이러한 글쓰기는 전략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봐야만 한다면 되겠습니까? 대신 위성사진을 보여주면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조건을 설명해주고, 동영상 등으로 문화를 소개하고, 몇몇 대표적인 지역에 가서 생활스타일을 체험하도록 하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죠. 이처럼 저도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글쓰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의 강의는 크게 기초과정과 중급과정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기초과정에선 글의 원리를 이해하고 구조와 논리를 세운 뒤 글을 고쳐보는 실습, 중급과정은 힘글쓰기 기술글쓰기 실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30초만 강의내용이 느슨해져도 곧바로 휴대폰과 컴퓨터를 꺼내 드는 직장인의 특성을 잘 아는지라 “매 순간 청중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임씨의 강의를 듣고 난 뒤 직장인들은 사내 보고와 발표가 달라졌다는 평을 듣는다. 대전에 있는 바이오벤처인 바이오니아의 박한오 사장은 “직원들이 임씨의 강의를 듣고 난 뒤 요약된 결론부터 보고를 하는 식으로 보고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임씨는 이렇게 말한다. “강의를 들은 뒤 실습을 하게 되면 수강생들은 신문 사설을 고칩니다. 신문 사설 고칠 줄 알면 무슨 글인들 못 쓰겠습니까?”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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