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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2.0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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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와 검은 백조

지중해 동쪽 연안에 있는 레바논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낙원이었다. 비잔틴제국, 오스만투르크, 아랍 등으로 지배국가가 바뀌었어도 이곳의 다인종사회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 돌연 이 지역에 기독교도가 우세해졌고 어느 날 근원을 알 수 없는 검은 백조 한 마리가 출현하면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다.

레바논 출신인 미국 뉴욕대 교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어린 시절 내전이 격화되어 가는 와중에도 주변의 어른들이 ‘불과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인접한 키프로스, 그리스 등으로 피란해 호텔 등 임시주거지에서 종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내전은 장장 17년을 끌었다.

탈레브는 미국으로 이주해 월스트리트에 진출했고, 1987년 뉴욕 증시가 대폭락한 블랙먼데이를 겪었다. 그에게 레바논 내전과 블랙먼데이는 동일한 현상으로 보였다. 18세기 호주대륙에 진출했던 서구인들이 검은색 고니를 발견함으로써 백조는 흰 색이라는 이전의 경험법칙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요즘 경제 용어로 정착한 ‘검은 백조’는 그가 레바논 내전과 블랙먼데이처럼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에 비유해 쓴 데서 시작됐다.

6ㆍ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민간인을 겨냥해 연평도에 포격을 한 뒤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1960년대의 청와대 습격과 1980년대의 아웅산 사건 등 간헐적으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됐지만 남쪽의 민간인을 겨냥해 포격한 것은 처음이기에 국민이 받는 충격이 컸다. 혹시 연평도에 검은 백조가 출현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미국의 한 언론인은 한반도에 나타날 수 있는 검은 백조로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꼽고, 한국과 주변 국가들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제3자의 견해이고, 우리로서는 남북간의 전면전, 아니 장기적인 국지전까지도 검은 백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유럽에 사는 한 지인이 “연평도와 서해안 한미훈련에 관한 뉴스가 이곳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밖에서 보는 한국은 시한폭탄 같다”고 걱정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러나 포격 일주일을 넘기면서 우리들은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한 잇따른 언론 보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것 같다. ‘별일 있겠어’ ‘이러다가 말겠지. 예전에도 그랬잖아’…. 내전 초기의 레바논인들처럼 우리는 60년 간 정전체제 하에서 유지된 평화와 북한의 간헐적인 도발, 그 뒤의 화해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검은 백조 현상의 핵심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심리적 맹목(盲目)이다. 연평도 공격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했으면서도 타성에 젖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군과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상당수가 무고한 동포에게 포탄을 쏘아대는 폭력적인 북한 정권의 실체와 이를 비호하는 중국의 편향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된 구체적인 까닭과 배경을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연평도에 검은 백조가 날아온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눈을 제대로 뜨고 쫓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난데없이 피난살이를 하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이 다시 섬으로 되돌아가 평화롭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남경욱 문화부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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