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빠 때문, 아니 엄마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에 성적이 조금 떨어졌는데 새 아빠 앞에서 저를 혼냈어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창피해 견딜 수 없어요./ 친척 집에 얹혀 사는데 구박이 심해졌어요. 자기 아들딸에게는 잘해 주면서 나만 못살게 해요. 맞고 욕을 먹다가 홧김에 손에 든 종이를 구겼는데 엄청 혼났어요./ 전문대라도 가고 싶은데 엄마는 학비가 비싸대요. 오빠도 아빠와 대학진학 문제로 싸웠는데 오빠도 너무 불쌍해요./ 선생님이 저만 미워하는 것 같아요. 급우들과 함께 떠들었는데 저만 불러 혼을 내요. 이젠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요.
■ 여성가족부 '사이버 아웃리치 상담소'에 떠 있는 글들이다(내용은 각색했음). 아웃리치(Out-reach)는 주로 선교를 위한 의료봉사에 쓰이는 말이지만 널리 현장에서 펼치는 전문가들의 봉사활동을 말한다. 여성가족부의 '아웃리치'는 가출 학교자퇴 폭력 성매매 등의 위험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찾아가 2차 위험으로부터 예방하는 활동이다. 길거리나 공원, 폐가나 야산 등을 찾아 다니며 이런 청소년들과 상담해 가정ㆍ학교로 돌려 보내거나 보호소ㆍ쉼터로 이끄는 일을 한다. 이러한 '거리 아웃리치'와 병행하여 '사이버 아웃리치'도 운용하고 있다.
■ 사이버 상담소에 떠 있는 글들은 한결같이 화급하고 절실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급해요!" "도와 주세요!" "꼭 부탁해요!" 등의 하소연이 서너 개씩 매달려 있다. 그들이 어른이나 주변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는 일로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극단적인 상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상담소를 방문하면 익명과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고 모든 고민에 대해 상담전문 선생님과 일일이 연결해 준다(http://coun.jikimi.or.kr). 사이버에서 상담을 원한다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미 길거리에 내몰린 청소년이 수만 명인데 계속 증가하고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
■ 직접 만나는 '거리 아웃리치'가 효과적임은 물론이다. 버스 내부를 상담공간과 편의시설 쉼터로 개조하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익명과 비밀이 보장된다는 신뢰를 심어줄 수 있다. 선진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수십~수백대를 활용하고 있으나 우리는 서울 대전 광주에서만 1대씩 운영하고 있다. 팸플릿이나 전단을 뿌리는 일도 아니고, 청소년 상담이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그런데 버스 1대가 서울시 전역을 담당하니 각 구청과 동에서는 가봐야 할 곳을 뻔히 알아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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