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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 낸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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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 낸 은희경

입력
2010.11.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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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51)씨가 여섯 번째 장편소설 (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장편으로는 (2005) 이후 5년 만이다. 열일곱 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의 첫 장편이자 출세작인 열두 살 소녀의 성장소설 (1996)과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한국 문단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그가 자신의 문학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성장소설로 되돌아온 연유, 그리고 두 작품 사이의 간극을 살펴보는 일은 올해 등단 15년이 된 그가 작가로서 밟고 있는 궤적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겠다.

이번 소설이 은씨의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은 무엇보다 성인이 아닌 청소년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 때론 위악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숨겨진 위선과 욕망을 폭로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것이 은씨의 소설이고, 이는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며 어른들을 냉소하는 소녀 진희의 시선으로 쓰여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고등학생 강연우와 그의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다. 연우는 여덟 살 연하의 애인을 둔 엄마 신민아의 철없는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줄 만큼 성숙하지만, 어른 뺨치게 영악한 애어른 진희에 비한다면 한결 생물학적 나이에 걸맞은 인물이다. 밀도 높은 문장과 이야기 구성으로 정평 있는 은씨는 열일곱 살 소년의 독백체로 서술 방식을 새롭게 하고, 그 또래의 학교 생활, 말투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연우가 힙합에 심취한다는 설정을 통해 내면의 불안과 세상을 향한 울분을 독백하듯 토로하는 힙합 가사를 곳곳에 인용, 소설 주제를 형상화하는 재료로 활용했다.

작가로서는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도전을 감행한 셈인데, 은씨는 “내가 장악하고 있다고 여기는 세계가 아니라, 잘 몰라서 불안하고 두려운 세계를 표현하려 했고 그 덕분에 주인공 소년의 불안한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소설은 연우가 이사와 함께 전학한 학교에서 사귄 세 친구와 보낸 여름부터 봄까지 네 계절의 이야기다. 연우의 새 친구는 한동안 미국에서 유학하다 돌아온 한 살 많은 동급생 독고태수와 그의 여동생 마리, 그리고 연우가 이사 온 집 근처를 배회하다가 그의 눈에 띈 이채영이다. 평소엔 친절하고 넉살좋지만 여차하면 터질 듯한 분노를 품고 사는 태수에게서 연우는 고등학생 래퍼 G-그리핀의 음악을 소개받고 곧 힙합에 빠져든다. 또 연우의 새 집에 먼저 살았던 학교 선배에게 채영이 보낸 엽서를 돌려준 일을 계기로 연우는 그녀와 가까워진다.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한 이들과의 교제는, 스스로를 “연약하고 시큰둥하며 운동에는 흥미 없고 책도 별로 안 읽고 성적도 수학을 빼고는 모든 과목이 중간쯤인 그저 그런 열일곱 살”이라고 여기던 연우의 내면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그에게 힙합과 그래피티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태수는 그해 겨울 자결하듯 죽음을 맞음으로써 연우에게 깊은 상실감을 남긴다. 짝사랑하던 학교 선배를 잊지 못하는 채영과의 연애는 연우에게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다.

성장통을 앓는 연우를 위로해주는 이는, 어느새 소년의 세계와 담담하게 이별한 연우 자신이다. 아픈 겨울 뒤에 찾아온 봄, G-그리핀의 공연장에서 연우는 “시간의 흐름과 막연했던 꿈들, 흔들리던 꿈들, 흔들리던 풋사랑, 언젠가 닿으리라 상상해봤던 먼 우주와 그리고 우리 태어난 곳의 아득한 어둠 같은 것”이 바로 “순정한 소년의 세계”였음을 깨닫는다.(473쪽)

작가 은씨는 “을 쓸 때는 세상을 강하게 볼 수 있도록 ‘왁찐’을 주입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이번 소설을 쓸 때는 근육이완제를 주사한달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인 ‘소년’이며 편안하고 유연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결 넉넉해진 작가의 시선을 확인하게 되는 소설이다.

은희경씨는 “‘소년을 위로해줘’는 내가 어느덧 작가로서 기득권이자 메이저가 됐구나, 이 상태로 계속 소설을 쓴다면 중요한 정서를 놓친 채로 경직돼 가겠구나, 하는 뼈아픈 반성 속에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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