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으면 죽었지 이제 준다고 해도 안 받아. 안 먹어.”
북한의 기습 포격이 있은 지 5일째인 28일 오전. 연평면사무소에서는 잔류 주민인 김모씨와 사무소 직원 간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포격 당시 인천으로 대피했다가 25일 섬에 다시 들어왔다는 김씨는 “남아 있는 사람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대피소에만 쌓아놓고 보급품을 안 주는 이유가 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 다 주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김씨는 결국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북한의 포격에 더해 한미연합훈련으로 긴장감이 한껏 높아진 연평도의 잔류주민들은 피란살이 못지 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생필품 난에다 기습포격 이후 연이은 북한 내 포성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고조돼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식량사정은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섬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소방서 등 관공서 직원을 포함해 총 29명(소연평도 포함 31명). 속속 지원되고 있는 구호품은 일차적으로 대피소 등에 비상용으로 비축돼 잔류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현지 주민의 하소연이다. 한 주민은 “있는 걸로 연명하고 있는 수준이다. 쌀은 그렇다고 쳐도 반찬 해먹을 부식거리가 없다”고 했다. 주민 박진구(51)씨는 “인천에 나가 있는 가족에게 연락해 반찬 거리를 보내달라고 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평면사무소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창고에 2,000~3,000인분 식량과 군에서 받은 전투식량 900인분이 있다. 물량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 다만 비상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번 주부터 (주민 대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대한적십자사 등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지만 그마저 빠듯하다. 구호 인력과 내외신 취재진 4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금새 물량이 동이 나고 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28일 3,000인분의 부식과 라면 2,000개를 새로 가지고 왔지만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기온은 뚝 떨어지는데 난방용 기름도 부족해 주민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 25일까지는 섬 내 주유소에서 유류 판매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보급이 끊긴 상황. 면사무소와 군은 이번 주부터 주 2회 주민에게 유류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 난방유가 떨어진 가구는 “기름이 부족해 남아 있는 사람끼리 서로 빌려서 쓰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정도 견디기 어려운 전쟁 스트레스가 갈수록 쌓여 대부분 고령자인 잔류주민의 건강문제가 현실화하고 있다. 연평보건소 관계자는 “이들은 26일과 28일에 이어진 대피 명령으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며 “육체적인 부상은 없지만 오히려 후유증으로 본다면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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