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유자가 오셨다. 상자를 여니 생김새는 울퉁불퉁한데 유자 향이 진동한다. 화양면 친구네에 수령 200년 가까운 유자나무가 있다. 2005년 봄에 유자꽃이 수천 송이가 피었다는 연락을 받고 꽃구경 다녀온 후 그해 늦가을에 유자를 받았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꽃이 좋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유자가 오셨다.
유자 향기에 취해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1,000여 개쯤 땄다고 한다. 몇 가마나 되었다고 한다. 나이 드신 유자나무다 보니 해갈이가 아니라 다섯해갈이를 하시는 모양이다. 친구는 유자며 매실이며 자신이 키우는 유실수에는 절대 농약을 치지 않는다. 마침 시내 사는 시 쓰는 제자가 안부 인사하러 찾아왔기에 나눠 주고 어머니는 유자차를 담는다.
부엌에서 유자를 다듬는데 집안 가득 유자 향기가 펴져나간다. 유자가 귀하던 시절 경남 남해에서는 유자를 '대학나무'라 했다. 유자나무 한 그루로 자식 한 명을 대학공부 시켰다고 했다. 유자 덕에 공부한 내 친구들도 있었다. 유자가 귀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요즘은 유자가 대량 생산되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명품 브랜드도 많다. 올 겨울 나는 친구의 유자로 비타민C가 풍부한 유자차를 마실 것이다. 친구는 유자나무가 좋아 그 집을 사놓고는 지금까지도 행복해 한다. 나무도 사람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여수 친구 정 많은 정만에게서 배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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