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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경제는] 아일랜드 구제금융 신청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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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경제는] 아일랜드 구제금융 신청의 전말

입력
2010.11.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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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사람들은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아일랜드의 브라이언 레니한 재무장관도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권유에 대해 ‘아일랜드 은행들은 자금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응수함으로써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지난주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협상을 앞두고 파이낸셜 타임즈가 비꼬며 한 말이다.

레니한 장관의 장담과 달리 지난 21일 아일랜드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85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공식 결정했다. 지난 5월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외부자금을 수혈 받는 국가가 되어 아일랜드 국민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만 하더라도 아일랜드가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아일랜드는 외국인투자 유치, 정보기술(IT) 붐 등에 힘입어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동안 연평균 7.3%의 고성장을 하면서 1990년대 말부터는 1인당 소득이 영국을 앞섰다. 재정수지도 2007년까지 10년 동안 흑자를 지속할 정도로 건전했다. 전문가들은 아일랜드를 ‘셀틱 타이거’(Celtic Tiger: 고성장하는 아일랜드를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에 빗댄 말)라고 치켜세웠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부러움을 사던 아일랜드가 뒤늦게 외부자금을 지원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일랜드 위기는 그리스 같은 국가부도 위험이 아니라 은행부실에서 비롯되었다. 총 외채 중 정부는 2%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은행들은 50% 넘게 가지고 있었다. 경제여건이 어려워질 경우 정부보다 은행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높은 구조였다. 2004년 이후 부동산 호황기를 맞아 은행들은 저리자금을 조달하여 부동산 대출을 대폭 늘린 결과 2004∼2007년 중 주택가격은 50% 이상 급등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은 2007년 5.6%에서 2008년 -3.5%, 2009년 -7.6%로 급격히 후퇴했다. 더구나 부동산 경기침체로 은행들의 건전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올 들어 주택가격은 고점대비 30% 이상 급락하고 모기지 연체율 및 주택압류는 급증하고 있다.

부실은행에 대한 정부지원이 늘어나면서 건전했던 재정마저 악화되었다. 2008년에는 재정수지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는 은행지원 급증 등으로 32%까지 악화될 전망이다. 이는 EU의 기준(GDP대비 재정적자 3%)을 10배 이상 초과한 수준이다.

이 와중에 10월 말 EU 정상회의에서 향후 국가부도 처리시 민간투자자에게도 손실을 분담시키겠다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이는 부도 우려가 높아진 아일랜드 국채 투매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11월 들어 국채가격의 하락폭이 커지면서 11일에는 1999년 1월 유로존 출범 이후 최저수준으로 폭락했다. 이제 아일랜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사줄 곳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유일했다. 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을 할 수 없게 된 은행 역시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ECB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담보부족으로 ECB 대출마저 어려워진 은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은행의 지급능력을 높이고 재정사정이 추가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외부지원이 불가피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레니한 장관이 금융시장에서 은행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던 것은 구제금융 지원조건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EU가 법인세(현재 12.5%) 인상을 지원조건으로 내걸 경우, 지금까지 낮은 세율을 기반으로 해 외국인투자 유치와 수출 증대에 힘써 온 산업정책의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에도 국채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는 등 금융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내년 초 조기총선 실시와 경제운영에 실패한 브라이언 코웬 수상의 퇴진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정불안은 2014년까지 150억유로의 재정긴축을 달성토록 한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EU가 구제금융 신청을 강권하다시피 하면서 아일랜드 위기 전염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포르투갈, 스페인 등으로 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공동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6개국은 금융 및 교역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유로존 내 경제규모 비중이 1.8%에 불과한 아일랜드의 불안이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연결되는 것은 운명과도 같다. 특히 경제규모가 4위인 스페인으로의 전염은 유로존의 체제안정에 결정타가 될 수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의 불꽃이 아일랜드에서 꺼질 수 있을지, 아니면 포르투갈, 스페인 등으로 옮겨 붙어 구제금융을 지원해야만 할지 세계인들은 연일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권성태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구미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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