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7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H사의 사내하청은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으로 보아야 하며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지난 11월 고법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번 판결로 정규직 전환의 기대심리가 부풀어진 비정규직 근로자 분규가 발생하고 있다. 회사가 대법원에 상고하고 비정규직 관련법의 고용의제, 고용의무를 헌법소원 한다면 이 문제가 법적으로 정리되기까지 앞으로도 2~3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 시점부터 감안하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내하청을 사용하는 자동차, 조선, 철강, 전기전자 기업들의 인사관리 불확실성은 증폭되어 왔으며, 이로 인한 인사관리 대응비용, 소송비용 등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들어갔다.
현대차의 경우 사내하청은 1998년 외환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하여 1만 명의 근로자가 실직한 이후, 노사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고용불안을 경험한 조합원에게 배치전환은 곧 고용불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단체협약의 배치전환 제한규정을 수정하게 된다. 개별적인 배치전환, 공장 이동 및 근무지 이동 시에도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희망자에 한해 시행하도록 변경되었다. 인사권의 핵심 조항인 배치전환권이 노동조합 측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동시에 당시 노조 간부들은 사내하청 고용의 불가피성을 도리어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다시 고용을 늘리면 경제위기 재발 시 고용불안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정규직 조합원의 배치전환을 억제함과 동시에 공장별 물량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내하청 근로자 투입을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사실상 합의한 것이다. 사내하청 근로자 대신 계약직을 투입할 경우 계약기간 경과 시 법적다툼, 숙련부족 문제가 발생한다. 또 일본 도요타처럼 파견근로자 투입도‘제조업 파견근로 사용불허’로 노동유연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사내하청은 유연성과 정규직 노조원의 고용안정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노사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물론 이후 고용안정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여 사용자의 배치전환권을 풀어주고 노조원의 유연한 배치를 통한 공장별 물량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했다면, 지금의 1만 명에 이르는 사내하청 규모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노조는 이 부분에 대해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불기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외환위기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사내하청 구조를 고착화시켜 온 노조의 정치적 행보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과거의 배치전환 억제와 사내하청 필요성을 주장해서 유연성의 활로에 동참했던 노조위원장들이 지금에 와서는 산별위원장이 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신들의 공동작품인 사내하청문제를 공격하고, 완전정규직화를 주장하는 것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현재 사내하청 문제의 해법은 관련 업종 노사가 차분히 업종특성에 맞는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상생의 고민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는 단체협상 억제된 배치전환을 허용하여 인사관리의 유연성 숨통을 터 주어야 한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사회적으로 제조업의 파견 허용이라는 처방이 검토될 수 밖에 없다.
상급단체와 정치권이 사내하청 문제를 정치이익 추구의 대상으로 여기고 단편적,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법원도 사내하청 문제가 형성되어 온 역사성, 노동시장의 고용문제 및 사회갈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무시한 채, 법 조항에 대해 기계적인 그리고 단면적인 해석을 하기보다는 거시적인 시야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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