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르포]"삶의 터전이지만… 北 추가 공격 두려워"형체조차 사라진 집들 선명한 포탄 자국 끔찍
25일 오후 3시30분. 연평도에는 정적이 흘렀다. 1시간30분 뒤 떠나는 마지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짐을 싸느라 종종걸음을 치는 주민들의 모습이 이따금 눈에 띌 뿐이었다. 면사무소에서 100여m 전방 바닷가에 자리한 공설운동장 축대에 선명한 포탄 자국이 이틀 전 북한군의 해안포 포격의 위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름 60㎝에 깊이 80㎝로 움푹 패인 구멍을 중심으로 주변 10m가량이 온통 그을림 투성이였다. 주변 주택들의 유리창들은 온전한 것 하나 없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어디에도 금속조각 같은 파편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일반 포탄이 아닌 불을 뿜는 특수탄으로 보였다.
연평도의 중심인 면사무소를 기준으로 남서쪽 해안 마을은 곳곳이 쑥대밭이 돼 폐허나 다름없었다. 10평 남짓한 2층 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피해가 더 컸다. 큰 망치로 내리친 듯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집이 수 채나 됐고 포탄이 지붕을 뚫고 들어가 폭발한 듯 3~4채는 지붕이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회색 벽돌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멍하니 자택의 불탄 자국을 바라보던 김음석(34)씨는 "아버지랑 같이 지어서 23년간 함께 산 집을 버려야 할 지경이다. 정말 할 말이 없다"며 골목을 배회하길 반복했다.
인근 횟집에는 폭발 충격으로 어항이 깨져 물고기가 죽고 김장을 위해 쌓아둔 배추는 말라가고 있었다.
포탄을 맞아 붕괴된 것이 1차 피해라면 화재는 2차 피해였다. 피격된 집을 중심으로 주변 집들이 죄다 전소되거나 그을렸다. 깨진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던 한 주민은 "그나마 포탄이 떨어지던 23일 바람이 세지 않아 불길이 많이 번지지는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면사무소 직원은 "17채가 전소, 5채가 부분 파손되는 등 22채가 피해를 입었다"며 "이는 건물 벽이 무너지거나 화재가 난 집만 집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발 충격으로 문짝이 뒤틀리거나 창문이 깨진 것 등 상대적으로 작은 피해는 아예 포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연평파출소는 직격탄 피해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파출소 뒷집 지붕을 뚫고 들어온 포탄이 파출소 뒷벽에서 터져 창문이 깨지고 벽이 뒤틀렸다. 김모 경사는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려 파출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자 마자 폭격을 맞았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포탄 10여 발이 마을을 강타했지만 대피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한 주민은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대피소 천장이 무너질 듯 흔들렸고 나중에는 시멘트가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대피소 콘크리트 벽 두께가 고작 30㎝에 불과해 외벽에 직격탄을 맞았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것"이라며 대피소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그나마 시설이 나은 편이라는 면사무소 옆 연평초등학교 건물 바로 옆 대피소는 조명은 물론 연기를 막아줄 방호문조차 없었다. 때문에 학생들은 포격 다음날 섬을 빠져나갈 때까지 어둠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공포의 밤을 지새야 했다. 만약 북한군이 화학탄을 발사했다면 대피소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또한 내부에 화장실도 없어 학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학교 건물이 있는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현지에 남았던 주민들은 이날 떠날 채비를 서두르면서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연평도에서 나고 자라 꽃게잡이로 생계를 잇는 김광춘(47)씨는 "연평도는 모든 게 마비됐다. 대책이 없다"고 한탄했다. 북한의 추가공격 우려로 인한 긴장 속에서도 섬에 남기로 한 김재현(72)씨는 "뭍에 나가서 할 일도 없다. 여기가 삶의 터전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든 생활터전을 두고 주민들이 떠나는 와중에도 복구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연평도의 전기공급과 통신선은 대부분 회복됐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어제 오후부터 상수도 공급도 원활히 이뤄졌고, 휴대폰 통화도 모두 정상화됐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 인천본부 직원들은 포격으로 부러진 전신주 2개를 교체하는 등 피해현장을 찾아 다니며 막바지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데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 같았다. 전파, 반파된 주택은 차치하고라도 기둥에 금이 가는 등 붕괴 위험이 있어 철거해야 할 집들이 수십 채에 달했다. 복구 장비와 건축자재, 인력이 인천에서 들어와야 하고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면 땅이 얼어붙는 것도 걸림돌이다. 장흥화 연평면 부면장은 "의용소방대나 청년회가 복구작업을 지원해야 하는데 다 나가서 복구할 인력이 없다"며 "상황이 장기화할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평도가 다시 만선의 활기를 찾게 되는 데에는 단지 피해복구가 문제가 아니다. 1시간 남짓한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 주민들이 겪었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날 오후 포격 이후 이틀 만에 운항을 재개한 인천발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 부두에 도착한 50대 여성은 "이제 짐을 챙겨 떠나면 그동안 가꿔온 터전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너무 허망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연평도=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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