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현지 르포] 연평 포7중대 언론 첫 공개포격 20여발 집중 반경 20~25m 아수라장중대장 "곳곳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증언
보초병의 눈빛은 매서웠지만 미세한 떨림마저 숨길 순 없었다. 매캐한 화약냄새를 품었던 대기는 신선했으나 언뜻 비릿했다. 사전정보가 없었다면 여느 전방부대나 풍겼을 긴장감의 한 단면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보초병의 절도 있는 움직임에 정문이 열리자 참혹한 세상이 펼쳐졌다. 25일 언론에 처음 공개된 연평도의 포7중대는 숫제 말과 글로는 정리할 수 없는 혼돈이었다. 우리 영토를 유린한 북의 포문이 첫 목표물로 겨눴던 직경 30m의 진지 주변은 상처투성이였다. 23일 오후 2시34분께 북한 무도 방향에서 날아온 포탄은 굉음과 함께 부대 전체를 뒤흔들었다.
화염에 의한 그을음, 불에 탄 건물, 곳곳이 갈가리 찢긴 콘크리트 포상(포 보호시설), 뚫린 철제 문, 움푹 팬 땅, 널브러진 파편들. 진지 안을 정확히 강타한 한발의 122㎜ 방사포탄은 1m 남짓의 추악한 잔해로 남아 뒹굴었다. 다행히 당시 장병들은 막 훈련을 마치고 포상 뒤쪽에 대기하고 있었다.
병사는 "가장 먼저 이곳에 포탄이 떨어졌고 이후 적의 공격이 계속됐다"고 증언했다. 그의 철모(방탄모)는 내피까지 녹았고, 전투복은 까맣게 그슬렸다. '포상 뒤쪽의 콘크리트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부대 안엔 총 4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울타리를 넘어 부근에 떨어진 것까지 더하면 20여발에 달하는 집중포화였다. 화석처럼 남은 폐허의 현장을 눈에 꾸역꾸역 담아도 종잡을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은 중대장(김정수 대위)의 설명으로 명징해졌다.
"화력이 얼마나 센지 진지를 중심으로 반경 20~25m 내 차량대기소 등은 불바다로 변했습니다. 포상의 좌 우 위 할 것 없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황급히 '소산'(消散ㆍ흩어지게 함)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3분 뒤 포 대피로로 집결시키고 훈련을 위해 조준했던 포신을 정렬, 반격을 개시했습니다. 대응은 신속했습니다." 그 사이에도 포탄은 계속 떨어졌다.
김 대위는 첫 포격을 당했지만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고 했다. 해병대사령부 주종화 중령은 "최초 포격이 시작된 북한 개머리해안 쪽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를 지닌 곳이 포7중대 포진지밖에 없어 맨 처음 집중포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위는 이후 보안을 이유로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다른 부대의 피해상황도 보고 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장병들은 묵묵히 피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멀리에서나마 다른 부대의 상황도 엿볼 수 있었다. 군이 섬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무도와 12~13㎞)이자 가장 높이 위치한 벌컨포 부대로 안내하는 길이었다. 버스 창을 스쳐가는 각 부대 곳곳에선 민간 소방차가 눈에 띄었고, 막사 주변엔 갖가지 보수용품이 쌓여 있었다. 포격의 흔적도 아찔하게 다가왔다. 장병들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군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섬을 타격한 포탄은 80여 발, 다수가 군 시설을 노렸습니다. 군사기밀상 피해상황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없는 점 이해해 주십시오." 전체를 볼 수 없었지만 참혹했던 그날은 조각조각 뇌리에 남았다.
연평도=남상욱기자 thoth@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