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부의 부자 감세 철회 및 대ㆍ중소 기업 동반 성장 정책들에 대해 정면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 등 대ㆍ중소 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를 집중 제기해 온 이민화 기업호민관이 중도하차하자 곧 바로 조직적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우려다.
동반 성장에 대한 대기업의 불편한 심기가 노골화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ㆍ중소 기업 동반 성장 정책도 노무현 정부의 상생 대책처럼 결국 흐지부지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은 25일 "내년에도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그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열린 전경련 주최 '2011년 경제전망 세미나'에서 "내년은 올해보다 수출 환경이 악화하고, 투자증가율도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최근 '부자감세' 논란과 관련, 여권에서 감세 기조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주목된다. 이에 앞서 18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도 "시장 경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중소 기업의 경쟁력 향상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는 발표문을 낸 바 있다.
특히 전경련 유관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아예 정부의 대ㆍ중소 기업 동반 성장을 위한 핵심 정책인 9ㆍ29 대책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한경연은 이날 '바람직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의 방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협동조합에게 단가조정 협의 신청권을 주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 9월29일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을 내 놓으며 효과적인 납품단가 조정을 위해 중소기업 협동조합에게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을 부여키로 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보고서는 나아가 "경제 원리로 풀어야 할 하도급 거래 관계를 규제 강화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 대기업에 중소기업과의 거래에 따른 부담을 가중시키게 돼, 오히려 대ㆍ중소기업 간의 거래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납품대금 부당감액 및 기술자료 탈취ㆍ유용행위 등에 대한 입증 책임을 원사업자(대기업)에게 전환키로 한 데 대해서도 "입증 책임의 일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기업의 입장에선 입증책임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계약 기간을 초단기간으로 설정, 재계약 조건을 계속 달리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며 "오히려 수탁기업(중소기업)들만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보고서는 이와함께 정부가 대형 유통업체들의 부당 반품, 수수료 인상 등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대규모 소매업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한 데 대해서도 "법률 제정의 이론적 근거가 약할 뿐 아니라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공격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중기 적합 업종ㆍ품목을 설정키로 한 것도 "글로벌 기업 환경의 변화에 맞지 않고 경쟁력 약화를 가져와 소비자 이익만 줄어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동반성장지수 산정도 정확성ㆍ객관성ㆍ파급효과 등을 감안할 때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이 노출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내다 봤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11, 12월은 납품단가 조정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때인데다 최근 기업호민관실도 무력화하면서 대기업이 그 동안 숨겨왔던 속내들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앞으로 9ㆍ29 대책을 어떻게 시행할 지 지켜볼 일"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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