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5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을 전격 경질한 것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옥죄어 오는 여러 가지 정치적 부담을 떨쳐 내기 위한 다목적 카드인 것으로 보인다.
장병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3월 천안함 사태 이후 이 대통령은 군의 확고한 대비태세를 누차 강조했다. 실제 국방부를 찾아 전군최고지휘관회의를 개최하는가 하면 군의 사기를 고려해 적절하게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천안함 사태는 씻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았지만 군 전체를 범법자로 매도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한 번 더 믿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6ㆍ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육상이 공격당하고 민간인이 죽는 연평도 도발의 참상을 겪은 것이다. 특히 국민들은 군의 소극적 대응을 납득하지 못했고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 전체가 들끓었다. 주요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 이후 국격을 높이고 자신감 있게 경제 드라이브를 걸려던 이 대통령의 정국 구상이 송두리째 흐트러졌던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재임 기간의 반환점을 돈 최고 통치자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안보 분야에서 두 번이나 처절하게 무너진 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이후 국방 개혁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올해 말을 목표로 청와대와 국방부는 국방 개혁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천안함 사태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 대통령의 국방 개혁 의지도 한 순간에 빛이 바랬다.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군 개혁이 완수될까지 김 장관을 통해 군 조직을 관리하려던 이 대통령의 구상이 무너진 것이다.
김 장관 경질에는 김 장관의 말 실수도 적잖이 작용했다. 김 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내가 (이 대통령과 같은) 지위에 있었더라고 확전을 방지하라고 지시했을 것 같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병사와 민간인 4명이 숨진 사태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최고조에 달한 이 시점에서 국방 분야 최고 수장이 통치권자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즉각 사실 관계를 부인했고 김 장관은 궁지에 몰렸다. 천안함 사태 이후 수많은 설화(舌禍)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던 김 장관이었지만 이번에는 도리가 없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 불가분의 일체이기 때문에 단순한 말 실수라도 큰 부담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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