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에 선전포고 통첩문을 전달했다. 이미 진주만 공격이 시작된 뒤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다음 날 의회 연설을 통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응징을 다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고립, 중립, 반전 등으로 갈라졌던 여론을 단숨에 잠재운 루즈벨트의"리멤버 펄 하버(Remember Pearl Harbor)!"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미 국민을 일치단결시키는 구호가 되었다.
대통령 '연평도 포격' 발언 논란
루즈벨트가 이렇게 국력을 조직화하고 통일된 힘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바탕은 국민의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였다. 그 신뢰와 지지는 대공황 시기인 1933년부터 이른바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고 소통을 다져온 결과였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확전 자제' '상황 관리'와 같은 지시를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루즈벨트의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이 대통령이 2008년 10월부터 매주 월요일에 해온 라디오 연설이 루즈벨트의 경우를 본뜬 것이라는 점에서 더 비교를 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루즈벨트처럼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다. 시대와 상황이 같지 않고 매체환경도 판이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언어의 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지고 보면 정치는 곧 말이고, 국가지도자는 자신과 나라가 처한 상황에 맞게 말을 잘 해야 하는 사람이다. 특히 대통령의 언어는 철저하게 사전에 준비되고 계획되어야 하며 발언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극적인 연출까지 가미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살펴보면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어이가 없고 납득하기 어렵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하라"거나 "단호하게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했다면 옳지 않다. 청와대의 거듭된 해명대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치자.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말을 들었느니 못 들었느니 하다가 몇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는 도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는 말로 정리가 된 점이다.
그 날 청와대 지하벙커회의의 분위기는 흥분이나 분노보다는 차분함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도 의외일 만큼 긴박감이 높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최고위 지도층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꼭 군대를 다녀와야만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도 말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용서할 수 없는만행"이라고 북한을 비난한 것은 사태 발생 후 18시간 만이었다. 미국 유럽 지도자들보다 한참 늦은 데 대해 일본 야당과 언론은 간 총리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비난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의 영토분쟁 지역인 쿠릴열도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를 전격 방문했을 때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했던 그는 이번에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말해 질타를 받고 있다.
국가지도자의 말은 언제나 국민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다. 메시지는 늘 기획되고 개발되고 관리돼야 한다. 메시지를 통해 국민은 정부와 대통령의 생각과 지향하는 바를 알게 되며, 본능적으로 그 메시지의 진정성과 적실성을 따져 수용 신뢰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비슷한 상황이 또 생긴다면?
청와대는 올해 7월 기구 개편을 통해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 이미지 관리를 담당하는 메시지기획관을 없애고 그 업무를 홍보수석과 대통령실장 직속의 연설기록비서관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기구 개편을 통해 메시지기획이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아직 국민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경우, 첫 마디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종 친 다음에 손을 들지 말고 지금부터 맹렬하게 궁리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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