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네스코는 프랑스 미식(Gastronomic meal), 지중해 음식(Mediterranean diet), 멕시코 요리(Mexican cuisine)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지만 어떻게 먹느냐는 인류의 유산이기도 한 것이다. 특정 메뉴나 단순한 식재료, 조리법 뿐만이 아니다. 먹는 것 자체를 즐기는 태도와 어떻게 즐겨야 할지 그 방식을 아우르는 식문화가 소중한 것이다.
2008년 롯데호텔에 오픈해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줄리앙 보스퀴스(29) 셰프, 지중해식 레스토랑을 표방하며 2005년 코엑스에 문을 연 마르코 폴로의 라병준(46) 셰프로부터 프랑스식과 지중해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먹는 것을 경외하라 - 프랑스식
남프랑스 툴루즈 인근에서 태어나 요리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줄리앙 보스퀴스 셰프는 온 가족이 모이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을 즐기곤 했다. 수프부터 시작해서 굴, 푸아그라(거위 간), 전채요리, 생선요리, 고기요리, 그리고 치즈와 2~3가지 디저트를 차례차례 내놓고 먹는다. 술도 빠짐 없이 코스별로 마신다. 식전주,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샴페인, 식후주 등 보통 5가지쯤 마신다. 먹고 떠들고 마시면서 매 순간의 미각을 가족의 추억으로 버무린다.
프랑스인들이 음식을 즐기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전채-생선-고기-후식 등 최소한 4개 이상의 코스, 산지의 식재료, 깐깐하게 고른 술, 잘 차려진 테이블 세팅,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하며 표현하는 감탄. 이런 것들이 그 특징이다.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 선정 배경으로 “생일 결혼식 기념일 등 특별한 날 즐기는 프랑스 미식은 가족 친구와의 사회적 유대를 공고히 한다”고 덧붙였다. 보스퀴스 셰프는 “프랑스의 미식 문화는 루이 14세나 나폴레옹 황제 등이 즐겼던 궁중의 대연회로 그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며 현재 프랑스에는 최고급 정찬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만 100여개가 성업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경외하는 음식을 음미하는 태도는 심리학적으로도 행복감을 높여준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곧 질리고 그 가치를 못 느끼지만 맛에 변화를 주고 이를 음미할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
보스퀴스 셰프가 대표적 프랑스 메뉴로 고른 것은 해산물 수프인 부야베스와, 디저트인 바닐라 수플레다. 부야베스는 해산물이 풍부한 프로방스 지역에서 유명한 전통 요리로 흰살생선, 조개, 오징어 등 다양한 해산물과, 토마토 당근 감자 펜넬 등 야채를 물에 넣고 샤프란과 마늘 등 양념을 해서 푹 끓여낸 진한 국물맛의 수프다. 흔히 정통 프랑스 요리는 크림과 버터를 많이 넣고, 오래 진하게 우려낸 육수 등을 써서 무겁고 강한 소스 맛을 내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부야베스도 그러한 종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식은 1970년대 누벨 퀴진(‘새로운 음식’이라는 뜻의 요리변화 바람)의 영향으로 맛이 가벼워지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피에르 가니에르도 변형된 부야베스를 선보인다. 생선육수를 차게 식혀 젤리처럼 만든 뒤 그 위에 올리브유에 살짝 볶은 흰살생선과 감자, 채 썬 올리브와 펜넬, 성게, 파마산 트윌(파마산 치즈와 계란 아몬드가루 등을 넣고 종이처럼 얇게 펴서 오븐에 구운 것)을 얹어 낸다. 그러면 재료가 뒤섞이지 않은 부야베스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보스퀴스 셰프는 “정통 조리법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지만 과거 금과옥조처럼 고수하기만 하던 조리법을 창의적으로 변형하는 실험을 많이 한다”며 “최근 파리에서는 간단히 오븐에 데워먹는 반조리식을 자제하고, 스스로 키운 야채로 자연주의적 건강식을 요리해 즐기는 등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요리에선 디저트도 메인 요리 못지 않게 중요하다. 수플레는 밀가루 계란 소금 설탕 등을 넣고 오븐에 구운 케이크인데 구울 때 크게 부풀어 올라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바닐라와 설탕을 뿌린 윗부분만 갈색으로 가열하고 오븐에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마술의 맛”(보스퀴스 셰프)을 낸다. 단순해 보이지만 재료의 비율이 안 맞거나 잘 젓지 않으면 수플레의 핵심인 ‘부풀어오름’이 이루어지지 않아 셰프가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낭패를 준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의 디저트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디저트라면 일 플로탕트(‘떠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카스타드 크림 위에 계란 흰자를 얹은 것), 크렘브륄레(‘불에 태운 크림’), 타르트 오 타텡(보통의 타르트가 뒤집힌 형태인 ‘타텡 자매의 타르트’), 오페라(초콜렛 커피 등을 얹은 케이크), 마카롱(프랑스에서 널리 먹는 샌드 쿠키) 등이 손꼽힌다.
건강식 너머 치유식으로 - 지중해식
곧이곧대로 규정하자면 지중해식이란 남유럽, 북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중해연안지역의 음식을 뜻求?것이어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식이라면 ▦올리브유 건과일 채소 치즈 요거트 허브 등을 많이 먹는 영양식 ▦단시간에 손쉽게 만드는 조리법 ▦다양한 와인과 함께 느긋하게 즐기는 식사 등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아볼 수 있다.
라 셰프는 지중해식의 대표적인 메뉴로 모로코 요리인 닭고기 타진(스튜의 일종), 농어 카파치오(회)를 얹은 그리스 샐러드, 이탈리아의 대표적 전채인 카프레제(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소개했다. 이 메뉴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보면 지중해식이 왜 건강식으로 불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카프레제의 주재료인 토마토, 타진 요리에 들어가는 터메릭과 큐민(커리 성분), 그리스 샐러드에 들어가는 야채들은 최근 항암물질로 각광받는 식품들이다. 버터 같은 동물성 기름을 거의 안 쓰고 올리브유를 쓰는 데다가 “와인은 식사에는 물론 간단한 간식이나 브런치에도 꼭 마실 정도”여서 심장질환 예방에 좋다.
요리과정도 시간이 오래 안 걸리고 쉽다. 카프레제는 그저 토마토를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기고 모짜렐라치즈와 곁들인 뒤 발사믹 식초와 페스토 소스를 뿌리기만 하면 끝이다. 타진은 닭고기, 양파, 블랙 올리브와 그린 올리브, 말린 살구, 향신료를 넣고 닭고기가 익을 정도로 끓이기만 해서 이탈리안 파슬리를 뿌리면 된다. 타진의 포인트는 향신료인데 터메릭과 큐민, 고수(코리안더)가 특유의 ‘북아프리카 향’을 내는 주성분이다. 라 셰프는 “이러한 향은 중독성이 있어 이 맛을 잊지 못하고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현지에서는 좁쌀 비슷한 쿠스쿠스를 비벼 먹는다.
그리스 샐러드는 원래 각종 야채에 페타 치즈, 화이트 와인 비네그레트를 얹어 먹는 그리스의 대표적 요리. 하지만 마르코 폴로에서는 페타 치즈 대신 올리브, 레몬껍질 간 것을 뿌려 얼린 농어를 얇게 썰어 낸다. 이렇게 지중해지역에서 올리브유나 허브만 넣고 날로 먹는 생선요리를 카파치오라고 하는데, 회를 즐겨먹는 우리나라 입맛에는 잘 맞는다.
라 셰프는 “조리과정이 단순하고 장식도 간소한 지중해 요리는 겉보기엔 투박하지만 식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린 ‘식재료의 오케스트라’인 셈”이라며 “신선한 재료, 올리브유를 사용한 덕분에 헬시푸드(건강식)를 넘어 힐링푸드(치유식)로까지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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