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부터 40년간 서울 토박이로 살아온 박모씨는 98년부터 숨이 차고 기침을 하는 횟수가 늘더니 2004년 결국 천식 진단을 받았다. 박씨는 자신의 집은 4~6차선 도로와 인접해 있어 공기가 늘 좋지 않았고, 99년까지 24년간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출퇴근길에 자동차 매연에 시달린 것이 천식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박씨는 정부와 서울시의 그릇된 환경정책과 자동차 회사의 대량 생산 판매 탓이라며 비슷한 질환을 앓고 있는 20명과 함께 2007년 2월 국내 첫 대기오염배출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올 2월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씨는 25일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건강권 침해와 관련한 소송이 늘고 있지만 재판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원고들이 승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원고가 입은 손해와 가해자의 위법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입증책임을 청구인에게 두고 있는데다, 환경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적시한 공신력 있는 자료나 데이터도 없어 건강권 침해소송은 대개의 경우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박씨 재판의 경우 주요 쟁점은 ▦자동차 배출가스 오염이 천식 등을 유발하는지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의 주 원인인지 ▦원고들의 병력과 배출가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이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각종 자료와 연구 결과만으로는 이를 증명하기 어렵고 정부나 자동차 회사가 제시한 반증이 상당해 이들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철저하게 원고에게 입증책임을 먼저 물었고 피고에게는 반증책임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환경 또는 건강상 문제는 여러 단계를 거쳐 피해가 드러나는 데다, 현재 과학으로는 원인과 결과를 증명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많은 점을 감안할 때 법원이 더 많은 정보와 자본을 가지고 있는 국가 등 가해자에게 입증책임을 전향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환경권과 건강권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녹색법률센터의 우경선 소장(변호사)은 "대기오염이나 석면피해 소송 등은 유사소송도 없고 판례도 없어 원고가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과학, 의학적 입증을 위해 비용도 많이 든다"며 "법원이 입증책임을 가해자한테 전환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는 등 다른 방법들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피해자 구제 차원에서 건강권 침해소송도 소음 및 일조권 침해 소송의 판례를 따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음 및 일조권 소송의 경우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법원은 피해기준을 확립한 뒤 피해의 정도를 산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로써 재판부는 일조권 침해와 소음이 수인(受忍ㆍ피해를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었는지를 기준으로 소송의 승패를 결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 비행장 소음의 배상기준을 80웨클 이상으로 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헌법상 환경권은 그 자체로 인정되는 게 아니라 이를 구체화한 법을 통해 범위와 요건이 정해지는 것"이라며 "시대 변화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일조권 등이 권리의 영역으로 들어왔지만, 아직 환경오염 소송과 관련해서는 산업화 사회에서 어느 정도는 침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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