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기이하고 엉뚱하다. 슬랩스틱도 딱히 없고, 조폭들의 일자무식 우스개가 스크린을 채우지도 않는다. 주연배우도 코미디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석규와 김혜수다. 제작사가 내세운 이 영화의 정체성은 서스펜스 코미디. 긴장감 어린 웃음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래도 과연 재미있을까라는 의문은 품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일상에선 별스럽지 않게 쓰일 대사들이 웃음을 제조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배꼽을 잡게 한다. 흡인력 강한 서사가 없는데도 115분이 술술 흘러간다. ‘이층의 악당’은 충무로에선 보기 드물게 캐릭터와 상황극으로 승부하는 웰메이드 코미디다.
시작은 범죄물의 분위기를 띤다. 문화재 밀매업자 창인(한석규)이 오래도록 수소문해온 고가의 중국 문화재 청화용문다기를 찾기 위해 딸 성아(지우)와 홀로 사는 연주(김혜수)의 집 이층에 세를 들면서 이야기는 예측불가로 뻗어간다. 창인이 문화재가 있을만한 일층을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주에게 접근하면서 이야기는 폭소를 조금씩 만들어간다. 철없는 재벌 2세가 유용한 공금을 메우기 위해 청화용문다기를 노리면서 긴장을 더한다.
창인이 청화용문다기를 찾기 위해 지하실에 몰래 들어갔다가 갇히는 대목은 누구나 포복절도할 만하다. 연주가 지하실 문을 열고 물건을 찾는 동안에 빠져나가려던 창인이 결국 다시 지하실에 갇히게 되는 9분 가량의 장면이 웃음을 몰아친다. 과자 봉지 냄새를 맡으며 1주일 가량을 버티는 창인, 지하실에서 나온 뒤 만신창이가 된 창인의 모습을 사랑의 고뇌에 빠진 탓으로 오해한 연주가 던지는 대사 “내가 뭐 대단한 여자라고”가 연쇄적으로 웃음을 부른다.
이야기의 이음새는 좀 허술하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가 접착제 역할을 하며 어설퍼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메워간다. 특히 한석규 김혜수 커플의 연기 궁합은 이보다 좋을 수 없을 정도다. ‘닥터봉’이후 15년 만에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연기란 타고난 자질만이 아닌 시간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져 만들어지는 무엇이란 걸 여실히 보여준다. 한석규는 한없이 나쁘지만 않은 악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 김혜수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우울증에 걸린 신경질적 주부의 역할을 맞춤으로 해낸다. 두 사람이 출연한 영화 중 최고의 연기라 치켜세워도 무리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인 듯하면서도 웃음기를 머금은 대사들이 재미있다. “거울 앞에서 울고 있는 내 누이 같은 여자” “아저씨가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아저씨가 똥이야?” “유럽연합 기준으로 당신은 아직 젊고 아름다워요.” “당신은 내 사파이어고 에메랄드고 크리스탈이예요. 아으, 이 사랑스러운 비관론자.” 등. 집을 마음 놓고 뒤지려는 창인이 등교를 거부하는 성아와 이를 방치하는 연주한테 던지는 대사들은 특히 흥미진진이다. “유럽연합에서는요. 애 학교 안 보내는 것도 이게 이게 아동 학대예요.” “유니세프 회원으로서 제가 이대로 못 넘어가겠어요.”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충무로 코미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던 손재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현대인들의 쓸쓸한 삶을 웃음으로 전하는 독특한 서술법을 선보인다. 그는 역시 주목해야 할 감독이다. 24일 개봉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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