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적절하게 대처했는지를 놓고 늦장 대응, 부실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군의 사태 축소 의혹마저 불거지면서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유명무실 교전규칙
군의 교전규칙에는 '영토를 침범할 경우 적의 공격에 상응하는 즉각 대응'을 명시하고 있다. 적의 공격 지점을 초기에 무력화해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한 비례성과 신속성의 원칙이다. 이에 대해 군은 누차 "두 배, 세 배의 화력으로 신속하게 응징하겠다"고 공언하며 "권한을 위임받은 현장 지휘관이 교전수칙에 따라 잘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딴판이었다. 북한의 해안포 공격이 각각 수십 분간 두 차례나 계속되는데도 무력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국민적 비판이 거세졌고 군은 궁지에 몰렸다. 이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교전규칙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교전규칙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전규칙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규정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교전규칙을 지키려면 한국군의 무기 성능이 적의 공격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월등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연합전력이 아닌 한국군 단독 작전으로는 정밀타격의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중요한 대강의 원칙만 규정한 교전규칙의 특성도 한 요인이다. 유사시 벌어질 수 있는 세부 사항을 시시콜콜하게 규정한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군 관계자는 "교전규칙은 그대로 준수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금과옥조가 아니고 현장 지휘관이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휘관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상황이 발생하면 '선 조치, 후 보고'가 원칙이지만 지휘계통이 엄연한데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끝내고 사후 보고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냐"고 말했다.
신속성 원칙 못 지켜
군은 북한의 1차 해안포 포격이 시작된 지 13분이 지난 오후 2시47분께야 첫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2차 포격 때도 북한의 사격 시점보다 13분 늦은 3시25분께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적의) 포탄이 떨어지면 대피해야 하고, 대피 상태에서 남서쪽이던 포의 방향을 다시 전방으로 바꾼 뒤 포를 준비해 사격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며 "13분 뒤의 대응사격은 훈련이 잘됐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대응사격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적의 공격을 일단 피한 뒤에 상황을 봐서 반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의 공격이 쉬지 않고 계속되는 한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한 군 교범에는 4분 이내에 대응사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군은 "4분이면 대응사격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비례성도 문제
군은 23일 6시30분께 공식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해안포 수십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평도 현지에서는 "해안포 200여발이 비 오듯 쏟아졌다"는 목격담이 잇따랐고 이어 8시께 소방방재청도 대처상황보고를 통해 "북이 200여발을 쐈다"고 밝혔지만 군은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국군이 80발의 대응사격을 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같은 군의 설명은 하루 만에 거짓으로 들통났다. 군은 24일 국회 보고에서 "2시34분께 북한의 1차 포격 때 연평도 내륙에 60여발, 해상에 90여발이 떨어졌고 3시12분께 2차 포격 때는 연평부대 주둔지와 레이더사이트 일대에 20여발의 포 사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북한의 해안포 공격을 모두 합치면 170여발이다. 군의 대응사격 80발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따라서 군이 교전규칙을 무시했다가 뒤늦게 사태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김 장관은 "넓은 연평도 곳곳에 포탄이 떨어져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며 "해당 부대장이 정확하게 포탄을 세어 보고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오차에 대한 설명으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연평도에 배치된 K_9 6문 중에 2문이 고장 나 대응사격이 온전히 이뤄지지 못한 것도 문제다. 군은 "북한 쪽을 향해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던 2문 중 1문과 이날 오전부터 진행된 사격훈련에 투입됐던 4문 중 1문의 탐지장비가 적의 공격으로 작동하지 않아 대응사격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K_9은 완전 자동으로 분당 6번을 쏠 수 있어 80발은 대응사격 규모 치곤 너무 작다. 반면 북한은 연발이 아닌 단발로 쏘는 수동식 포를 갖고서도 170여발이나 쐈다.
해안포기지 놔두고 변죽만
연평도의 지상 전력으로는 북 해안포기지를 타격할 수 없다는 점도 논란이다. 반격을 했지만 해안포기지가 제대로 파괴되지 않아 북한이 마음 놓고 2차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군은 24일 "북한의 해안포는 해안 절벽에 갱도를 구축해 사격하기 때문에 아군이 운영하는 곡사화기(K_9)로는 직접 타격하기 어렵다"며 "해안포기지를 무력화하기보다는 막사라든지, 주변에 있는 다른 시설을 무력화함으로써 해안포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게 하는 게 전부"라고 밝혔다.
군이 23일 공식브리핑에서 "북한의 도발 원점에 집중 타격했기 때문에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자신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설명이다. 연평도에는 K_9 외 105㎜포가 배치돼 있지만 사거리가 짧아 해안포를 공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밀타격무기를 탑재한 공군 전투기를 투입했지만 공격을 주저했다. 북한의 첫 공격이 시작된 지 4분 뒤인 2시38분께부터 8분 동안 총 8기의 F_15K, KF_16전투기가 현장에 출동했으나 초계비행을 하는 데 그쳤다. 군은 "확전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고 해명하지만 북한의 해안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없는 지상포 사격에 자위권 행사를 전적으로 의존한 점은 석연치 않다.
연평도에 설치된 대포병탐지레이더도 말썽이었다. 레이더가 해안포의 1차 포격 지점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2차 공격이 이어졌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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