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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려불화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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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려불화대전'에서

입력
2010.11.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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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일까. '고려불화대전-700년만의 해후'를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면서, 황홀한 감동과 깨진 환상 사이, 이번에는 어느 지점쯤에서 환호하고 실망할까 기대 반 각오 반이었다. 박물관에 가는 일이란 '알고 있는' 작품이나 유물을 처음으로 혹은 새로운 환경에서 직접 대면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걸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나 전시일수록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경우가 많다.

G20의 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은 박물관은 발길을 돌리고 싶을 만큼 북새통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회화에 비견될 만한 동양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고려불화가 아닌가. 남아 있는 작품도 많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 해외에, 그것도 상당 부분 깊은 사찰에 꼭꼭 숨어 있어 전공자들조차 직접 볼 기회가 거의 없던 터였다. 산 넘고 바다 건너 발품을 팔아도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진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G20이 가져온다는 장밋빛 전망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이 선물을 놓칠 수는 없었다.

'진리의 꽃, 고려불화'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조건들이 적지 않았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도상의 의미를 읽어내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고, 어두운 조명 아래의 빛 바랜 화면은 유려한 선과 아름다운 색채를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겠다고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 빨리 나가자고 부모를 보채는 아이들, 저마다의 식견으로 지방방송을 해대는 전시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전시작품 수가 108점이라던가. 저마다의 욕망과 번뇌가 둥둥 떠다녔다.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 깨달음의 존재이신 부처님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 특히 관음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에 기대어 볼까 하고 긴 기다림 끝에 승려화가 혜허(慧虛)가 그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본 센소지 소장) 앞에 선다. 보타락가산의 암좌에 걸터앉은 일반적인 수월관음도와는 달리 큰 물방울 모양의 광배 속에 선 자세로 유려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단호하나 부드럽고 화려하나 기품이 있는 모습은 과연 고려불화의 정수 중의 정수라 할 만하다.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가늘디가는 손가락은 고통을 단 칼에 해결해 줄 전지전능하신 신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인간의 마음을 갈피갈피 헤아려줄 듯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이 차가운 듯 투명한 빛의 세계는 아마도 먹선 하나하나에 실린 간절한 기도 덕분일 듯싶다.

그 발 밑에 간절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작은 동자가 눈길을 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 가운데 28번째로 관음보살에게 법을 구하는 장면이라지만, 내 간절함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불법은커녕 내 속에 들끓는 무수한 욕망의 경중조차 따지지 못해 우물쭈물하다가는 차례를 기다리는 뒷사람들에게 떠밀려 나왔다. 보는 것만으로 보살이 된다는 그림이라니 짧은 만남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소란함도 기다림도 보상해주는 훌륭한 전시였다. '700년만의 해후'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해외에 반출되어 있는 고려불화의 귀향전이라는 의미도 각별하다. 고려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담긴 불화들이 엉뚱하게도 타국에서 그 나라의 보물이 되어 있거나 현지의 협시보살을 맞이하여 새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단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문화의, 평화의 전령이거니 생각하면 조금쯤은 위로가 될까.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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