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죽음만이 주목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전히 적과 마주하고 있는 나머지 소대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한 미군 해병 중위가 22일(현지시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애끓는 슬픔을 뒤로하고 더 이상 자신의 아들 죽음이 부각되는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대신 아직 전장을 지키고 있을 우리 모두의 아들인 나머지 소대원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9ㆍ11테러 이후 입대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길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아버지는 이라크에서 2003년 바그다드와 티크리트, 2004년 팔루자 공격을 지휘한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 존 켈리 중장. 위험한 전쟁터를 누비며 진정한 군인정신을 보여준 켈리 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미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켈리 장군의 둘째 아들 로버트 마이클 켈리(29)는 지난 9일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서 소대원들을 이끌고 순찰하던 중 지뢰를 밟아 전사했다. 23일 LA타임스 등에 따르면 로버트는 지난 9년 간 이라크와 아프간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유일한 ‘장군의 아들’이다. 로버트의 형인 존 역시 해병 대위로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지금은 남부 캘리포니아 트웬티나인 팜스 해병기지에서 아프간에 참전하는 병사들의 훈련을 맡고 있다. 전사한 로버트도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한차례 복무한 뒤 2008년에 재입대해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
모병제를 채택한 미국에서 참전한 가족 구성원이 있는 경우는 전체 가정의 약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켈리 장군의 가족처럼 두 세대 이상이 국가를 위해 전장을 누빈 경우가 적지 않다. 월남전에 해군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6년 포로생활 끝에 생환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부친과 조부가 모두 해군제독을 지냈다. 최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듀크대 강연에서 2004년 이라크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아들을 둔 래이 오디에르노 전 이라크주둔 미군사령관을 언급하며 “많은 군 고위간부 자녀들이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으며, 전쟁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들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켈리 장군도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괴로워했지만 친한 친구에게조차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순식간에 죽었다. 신이 아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전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는 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했다.
로버트의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미 전역에서 애도의 이메일과 전화가 가족에게 속속 답지 하고 있다. 켈리 장군은 가족을 대표해 “고통은 상상할 수 없지만 많은 힘을 얻고 있다”는 답장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아버지 켈리 장군은 “소대원들이 소대장을 잃고 여전히 적과 대치한 위험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 소대원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LA타임스는 전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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