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구제금융 합의에 대한 시장의 환호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를 제물로 바친 시장은 다음 제물을 찾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재정위기가 그리스에서 아일랜드로, 다시 포르투갈까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을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예 '유로 위기의 초점이 포르투갈로 옮겨졌다'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그러면서 금융시장의 관측은 "포르투갈이 다음이고 궁극적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같은 신세를 면하기 힘들 것"이란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국가의 부도 위험도를 나타내는 포르투갈의 신용부도 스와프(CDS) 금리가 상승하고 있으며, 그리스 아일랜드 및 스페인의 CDS 역시 오름세다.
유럽 증시도 아일랜드 구제금융 합의 발표 다음날인 22일 일제히 상승세로 출발했다가 약세로 반전, 마감했다. 아일랜드 위기의 봉합이 유로존 위기의 종결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한 투자 분석가는 AP통신에 "이제 아일랜드가 무너진 상황에서 시장의 관심이 빠르게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옮겨지고 있다"며 "스페인까지 흔들리면 유로권의 충격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포루투갈의 주제 소크라테스 총리는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채권만기가 대규모로 돌아오는 내년 4월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재정감축안이 예정대로 26일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위기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
유로존 4대 경제대국인 스페인의 위기는 핵 폭탄급이란 지적이 나온다. 호세 사파테로 총리가 기업인들과 위기극복 방안을 긴급 논의키로 하는 등 위기차단에 나섰지만, 지금 상황은 1990년대 일본보다 나쁘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만약의 사태 때 포르투갈은 515억유로, 스페인은 무려 3,500억유로의 구제금융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그리스 사태 이후 무려 7,500억유로의 유로존 재정안정기금을 조성해 놓았다. 아일랜드에 지원키로 한 900억~1,000억 유로를 감안해도 '아일랜드급 위기'를 6번은 넘길 액수가 남아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22일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위기 지연에 불과하다며 "아일랜드엔 차라리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더 낫다"고 비판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도 유럽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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