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이던 소녀는 "마냥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인라인롤러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퀴 위에서 중심을 잡지조차 못해 수 없어 넘어지고 깨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점점 빠져 들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웠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적수가 없었고, 주니어 무대는 좁았다.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 4관왕, 올해 7월 아시아선수권 4관왕, 최근 전국체전 3관왕을 휩쓸었다.
'단거리 여왕'을 꿈꾸던 여자 인라인 대표팀의 막내 안이슬(18ㆍ청주여상)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00m 타임 트라이얼, 500m 스피린트 두 종목에 출전했다. 지난 10월 포항종합운동장에서 만났던 수줍음 많은 10대 소녀는 당시 "금메달을 꼭 따겠다"던 약속을 끝내 지켰다.
한국 여자 인라인의 기대주 안이슬이 23일 오전 광저우 벨로드롬 내 인라인롤러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300m 타임 트라이얼에서 26초870의 금빛 레이스를 펼치며 금메달을 품었다. 안이슬은 이로써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에 채택된 인라인에서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오후 이어진 500m 스프린트 결선에서는 44초885를 기록해 44초850의 황위팅(대만)에 뒤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줄곧 1위로 치고 나가다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역전을 허용한 게 뼈 아팠다. 300m 타임 트라이얼은 혼자 300m를 달려 가장 좋은 기록에 따라 메달 색깔이 갈리고, 500m 스프린트는 결선에 오른 4명이 함께 달려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경기 뒤 만난 안이슬은 "목표였던 2관왕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 한국 트랙과 바닥상태가 너무 달라 적응에 애를 먹었다"며 "500m 마지막에 다리에 힘이 풀려 선두를 내줬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아쉬워했다. 인라인이 바닥상태와 코스적응 등에 유독 민감하다 보니 대표팀은 조금 이른 지난달 27일 광저우에 입성, 구슬땀을 흘려 왔다.
안이슬이 이를 악물고 달려야 하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광저우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라인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 채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안타까워요. 이번 대회 스피드에 걸린 금메달 6개 가운데 한국이 4개 이상을 따야 4년 뒤에도 다시 뛸 수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거든요."
그래도 대회 첫날 안이슬의 '금빛 질주'로 목표(금 4개)를 향해 순항 중인 대표팀은 24일에도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인라인 1인자 우효숙(24ㆍ청주시청) 등이 주종목인 1만m EP(제외+포인트)에 나선다. 우효숙은 2003년 베네수엘라 대회 1만m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광저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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