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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타성에 젖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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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타성에 젖은 군대

입력
2010.11.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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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참수리 고속정이 어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등 계속 이어지는 군대사고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44년 넘은 RF-4팬텀 정찰기의 추락 사고는 노후 장비를 교체해 주지 못한 정부와 국민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병보다 장교 군기가 더 문제

디지털 시대인 요즘 인화에 무려 6시간이나 걸리는 필름카메라가 장착된 비행기, 거구를 이끌고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골짜기를 따라 저공 곡예비행을 해야 하는 RF-4팬텀 정찰기의 사고는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속정 침몰과 장갑차 추돌, 고무보트 전복사고 등은 발표 내용이나 정황 등으로 봐서 군기강의 총체적 해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 동안 사병들에 대한 군기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장교들에 대한 군기 부족 지적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장교들의 군기도 한 번 짚어보아야 한다. 침몰한 해군 고속정장과 고무보트를 탄 공병부대 중대장 등은 공교롭게도 똑같은 대위이다.

고속정은 함교의 지붕 위에서 정장이나 부정장이 반드시 지휘를 하게끔 돼 있는데, 시속 22km와 시정거리 5km 상황에서 어선과 충돌했다는 것은 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공병 중대장 역시 군의 발표대로라면 빠른 임무 수행의 성과를 위해 차량이동의 지시사항을 어긴 것으로, 타성에 젖은 임무 수행과 성과주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 전역한 초급장교 출신들의 상당수는 '장교는 서류 찍어내는 기계'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전투 위주의 선진국 군대에 비해 우리 군은 비전투 업무에 너무 많은 힘을 낭비한다. 과도한 비전투 업무로 인해 행정업무가 많아지고 성과 위주의 평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타성에 젖게 된다. 창의적인 사고와 전투ㆍ작전능력보다는 단순업무의 반복이 강조되는 근무 환경이 장교들의 군기 부족과 안전 불감증으로 이어지는 요인이다.

'사병의 꽃은 병장'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는 같은 대대원 중에서도 중대만 다르면 1중대 이병이 2중대 병장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은 한 술 더 떠서 고참병을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뛰어다니는 이병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국방부는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면서 병장의 권위와 명예를 땅에 떨어뜨려 버렸다. 결과적으로 병사 하나하나를 장교들이 챙겨야 한다. 훈련에 임해서도 긴장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장갑차 추돌사고도 숙련도를 떠나 조종수가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과거처럼 폭력적인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병의 계급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근무 경험과 계급을 무시한 채 통틀어 똑같은 '어린 사병'으로 인식한다면 군대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병들의 군기 확립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전시행정 줄이고 정신개혁을

국방부는 사고가 나지 않는 군대만 주문할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지 않는 강한 군대를 원해야 한다. 누구나 가고 싶은 군대도 좋지만,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군 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계급의 명예뿐 아니라 사병계급의 명예와 권위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제 각종 작업이나 전시행정 등을 과감히 줄이고 장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정신개혁 작업이 필요할 때이다. 사병들에게도 엄정하지만 따뜻한 병영문화를 주문해야 한다. 군인은 전투의 프로가 되어야지 행정과 작업의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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