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무차별 도발이 연평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23일 오후 2시34분부터 북한군의 해안포와 곡사포 수십여 발이 쏟아지자 평온했던 연평도 어촌마을은 한 순간에 전장으로 돌변했다. 포격은 군 시설은 물론이고 마을까지 덮쳐 민가 수십 채가 파괴되고, 불길에 휩싸였다. 야산에 떨어진 포탄으로 산불까지 일어나 섬 전체가 시커먼 연기에 뒤덮였다. 화재로 배전선로 2개가 끊어져 전체 924가구 중 절반 정도 가구에는 전기 공급도 중단됐다.
포격이 시작되자 연평초등학교 등에서 수업 중이던 학생과 주민들은 대피방송을 듣고 인근 방공호 19곳과 군부대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 방공호는 40~50㎡ 규모이고, 전기 공급이 안돼 주민들은 촛불 등을 켜고 추위와 공포에 시달렸다. 인천시 관계자는 “연평도 일부 지역은 정전상태이고, 몇 곳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주민 1,600여명은 육지나 섬 안의 방공호 등으로 대피했고, 공무원 최소 인원만 연평면사무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포격으로 연평도 마을 곳곳이 피폭 흔적으로 뒤덮였다. 정전과 함께 휴대폰도 연결이 지연되거나 불통돼 주민 불안은 더욱 컸다. 일부 기지국은 자체 발전기로 기능이 정상화하고 있지만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통화 등이 일시에 몰리면서 연결 지연 현상이 계속됐다.
오후 4시께 군부대 진지로 대피한 주민 박모(54)씨는 “포탄이 도로에 떨어졌는지 도로 한가운데가 10㎝ 정도 깊이로 푹 파였고, 주변에는 40∼50㎝ 크기의 포탄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며 “맞았으면 즉사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북한과 가까워 늘 가슴 한 곳에 불안감을 안고 살았던 주민들이지만 우려가 현실이 되자 충격과 혼란 속에 빠져 들었다. 특히 주민들은 이번 사태가 확대돼 남북간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연평도의 한 어촌계장은 “마을에 포탄이 떨어진 것은 섬이 생긴 이래 처음이다. 정말로 전쟁이 나는 게 아닌가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전 어민회장 김모씨는 “마을 전체에 불이 나 초토화하는 것을 보니 참담하다. 연평해전이 두 차례나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런 사태는 없었다”고 치를 떨었다.
군 당국은 이날 포격으로 인한 민간인 부상자가 3명 정도 있다고 밝혔다. 여고생 1명의 소재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확한 인적 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악화하자 주민들은 개별적으로 어선을 구해 섬을 탈출하기도 했다. 옹진군은 어선 대여섯 척이 선주의 가족 등을 싣고 인천항으로 대피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포격이 섬과 인근 바다에 떨어졌지만 선박 피해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오전에 출항했던 어선들은 낮 12시께 연평도로 돌아왔다. 해경은 이날 오후 3시 인천 덕적도 서쪽 특정해역(5,200㎢)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87척을 모두 서남쪽 안전해역으로 회항 조치했다. 서해 5도를 오가는 여객선 3척은 해경 경비함정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으로 돌아왔다.
해경은 오후 3시를 기해 인천 본청과 인천해양경찰서 등에 최고비상경계령인 갑호비상을 발령, 전 직원을 비상 대기시켰다. 연평도 인근 해역에는 주민구호 등을 위해 경비함정들을 대기해 놓은 상태다. 해군도 구호 및 의료요원 투입을 준비 중이고, 산림청은 산불을 끄기 위해 경기 김포시에 바닷물로 진화가 가능한 대형헬기 두 대를 전진 배치했다. 인천항의 12개 연안여객항로는 포격과 함께 즉시 통제됐고,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의 헬기와 경비행기의 운항도 금지됐다.
북한 도발의 불안감은 연평도와 인접한 서해 5도의 나머지 섬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인천시는 이날 오후 4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에 주민 대피 명령을 내렸다. 세 섬에는 주민 5,570여명이 살고 있다. 시 관계자는 “북한에서 이상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대피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인천=송원영기자 wysong@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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