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40 여년의 서울 살이를 문득 접고는 90년대 초 이 고장에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집 가까이에 조그만 땅을 샀다.
낮은 산언덕인데 바다와 접하고 있었다. 자란만이 환히 내다보이는 그 전망이 여건 마음에 드는 게 아니었다. 산 등지고 바다 내다보는 곳이면 언제나 마음의 둥지를 틀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언덕으로 굽어진 오솔길을 내려서면 바로 바다였다. 다도해라는 이름다운, 크고 작은 여러 섬이 바라다 보였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섬들은 파도에 설레면서 무슨 동화라도 들려 주는 것 같아 보였다. 제법 널따란 모래사장도 펼쳐져 있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대지 않는 한적한 물가에는 이따금 산에서 내려온 오소리나 너구리 등속의 산짐승이 유유히 거닐곤 했다. 그럴 때면 혹 그들에게 겁줄지도 몰라서 내 발걸음은 절로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집에서 글쎄, 걸어서, 반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여서 산책 삼아서 해변에는 자주 들르곤 했다. 오고 가는 길목을 걷는 것보다는 500㎙는 더 되게 펼쳐진 백사장을 걷는 재미가 더 있었다. 터벅터벅 걸으면 물기 짙은 모래에 발자국이 찍히곤 했다. 줄줄이 이어진 그 자국을 무슨 어엿한 나의 행적을 더듬는 것 같이 되돌아보곤 했다. 잘만 살피면 나도 미처 모를 무슨 사연이 묻어날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걷는 것 자체에 마음 홀릴 수가 있었다.
잔잔하게 밀려들고 나가고 하는 파도는 모래사장의 물가에 아기자기한 수를 놓곤 했다. 그 들쭉날쭉 하는 연속무늬의 아름다움! 그 줄무늬에는 바다가 파도에 실어서 되새기는 은근한 속삭임이 곱게 설레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서는 집게손가락 끝으로 짚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것들의 속내가 다소곳하게 묻어나는 게 아니던가!
그러다가는 일부러 물살의 무늬와 나란히 잔걸음을 옮기곤 했다. 절로 작은 갈지자 걸음 을 옮기면, 마음으로는 야금야금 춤추는 것 같기도 했다. 파도의 율동이 내 발길에 옮겨 붙는 것이었다.
파도는 들물 날물, 그리고 사리와 조금 따라서 모래사장에다 여러 겹으로, 문자 그대로 파상(波狀)의 줄무늬를 새기곤 했는데, 거기 차마 발을 들여 놓을 수는 없었다. 너무나 아기자기했다. 달콤한 말로 속살대는 것 같기도 했다. 발길로 그걸 밟아대다니, 어림도 없었다. 언감생심으로 옆으로 비껴 다니기 마련이었다.
한데 그 가장 저리를 피해서 걷다 말고는 모래 바닥에 주저앉는 것도 멋있었다. 섬들 새로 펼쳐진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앉았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명상에 젖는 것도 그럴싸했지만, 머릿속이 말갛게 빈 채로 생각에 잠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파도가 출렁대는 기척을 따라서는 사색의 무늬가 아로새겨지곤 했다.
물가의 서쪽 자락에는 바위너설이 제법 길게 뻗어 있는 게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너설은 들고 날고 하면서 층이 져 있는데, 층마다 좁다란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들물이며 날물의 자국이 틈새마다 새겨져 있기도 했다.
거기서 해조(海藻) 들을 캐곤 했다. 파래, 돌김, 천강 따위의 바다풀이라니! 뜯는 길로 조금 입에 물면 그 향기며 맛이라니! 그것은 바다가 베푸는 성찬이 아닐 수 없었다. 온 입안이 상큼해지는 것과 함께 온 신경이 상쾌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층이 진 바위 틈서리에는 게들이 바글댔다. 이리 뛰고 저리 기고 하면서 녀석들은 영락없이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수놈의 엄지발가락 하나는 꼭 커다란 붉은 가위 같아 보였는데 그걸 추켜들고는 흔들어대면서 기세를 떨치면 암컷들은 기가 죽은 시늉을 짓곤 했다.
이렇게 나의 물가에서 나는 희희낙락 온갖 재미를 보고 즐거움을 누리고 하는 중에 정말이지, 뜻 박의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는 엄청 큰 실수를 끝나는 꼴의 일을 범하고야 말았다.
어느 쾌청한 여름날이다. 늘 그렇다시피 잔뜩 수영을 즐겼다. 좀 망령된 일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 그림자라곤 얼씬대지 않는 곳이라서 맨 몸, 알몸으로 헤엄을 쳐댔다. 물론 물장구도 치고 일부러 덤벙대기도 하면서 한참을 보내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다가 이상한 걸 보게 되었다. 비교적 큰 물고기들이 여러 마리가, 바로 물가의 모래사장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뭘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복의 무리였다. 하돈(河豚)이라고 또는 복어(福魚)라고도 하는 것들이었다. 어른 팔뚝만한 길이에 배가 불룩하고 머리가 우뚝한, 그 은빛 나는 물고기는 영락없는 참복이었다. 그것들이 하필 물살의 끝자락과 맞닿은 모래 위에서 물거품을 일으키면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왜 저 야단일까? 물속도 아닌, 물가에 나와서는 저 요란을 떨고 있다니!
나는 그들이 파도에 밀려서 물가에 밀려 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물속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악지를 쓰고 있다고 여겼다.
살려 주어야지!
한 마리씩 집어서는 바다 속으로 던져 주었다. 차례, 차례 여러 마리를 물속으로 되 돌려 주었다. 뜻하지 않게 복의 119 구급대가 된 나는 의기양양, 마을로 돌아 왔다. 목숨을 구한 그들이 뭔가 보답을 할 것이라고 우쭐대면서 나는 그 경과를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해서 늘어 놓았다. 한데,
"저런, 저런 남의 씨종자 말려 놓고선!"
마을 노인 한 분이 그렇게 퉁을 놓았다. 얼떨떨해 있는 나에게 그는 말을 계속했다.
암놈 복이 알을 낳기 위해서 어렵사리 모래사장에 올라 선 것을 당치도 않게 물속으로 내던지는 흉측한 짓을 내가 했다고 그는 풀이해 주었다. 119가 뜻하지 않게 남의 씨 말리는, 남의 형통을 끊어 놓는 폭도가 되고 파괴자가 되다니! 본의 아닌, 실수라고 해서 무마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복에게 복 받자고 한 짓이 복 놓치는 꼴로 결말이 나고 만 이 딱한 사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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