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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나는 격류였다’ 낸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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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나는 격류였다’ 낸 고은 시인

입력
2010.11.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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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언어의 신체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고양이 꼬리의 뻣뻣하고 곧추선 떨림, 주인이 돌아올 때의 개 꼬리의 기쁨 같은 것을 인간의 언어가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요. 가을밤 새벽까지 멈추지 않는 벌레의 울음소리는 어떻고요. 단지 문자의 범위에서 문법이나 표현에 만전을 기하는 것으로는 안될 겁니다. 우리 언어도 온몸을 다해서 세상에 바쳐져야 할 것입니다.”

고은(77) 시인은 산문집 (서울대출판문화원 발행) 출간을 맞아 23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여전히 푸르른 ‘언어 갱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 완간 이후 내 손은 놀고 있지만 도박꾼의 손가락처럼 긴장을 잃지 않고 있다”면서 “내년 3월쯤 시집 두 권을 낼 것”이라고 근황과 계획을 밝혔다.

이번 산문집은 그동안 그가 발표한 기고문과 강연문, 국내외에서 가진 대담 등을 정리한 책이다. 모두 6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엔 월령가(月令歌) 형식을 빌려 매달 한 편씩 한국의 풍경과 역사를 소재로 쓴 12편의 글이, 2부엔 시를 비롯해 문학 예술 전반에 관한 생각을 밝힌 글이 실렸다. 국내외 강연 원고(3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제언(4부), 해외 번역본에 실은 서문(5부), 대담(6부)도 각각 따로 묶였다. 책 표지는 영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시인의 외동딸 고차령씨가 자신의 그림을 넣어 직접 디자인했고, 책날개에는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가 그린 시인의 초상화가 실렸다.

산문집 제목의 연원은 고은 시인이 2008년 일본의 진보학자 와다 하루키와 가진 대담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선적(禪的)이랄까, 무엇에 투신하는 충동이 있었습니다… 그뿐더러 나는 점점 하나의 격류가 되었습니다. 불교 유식(唯識) 세계에서의 ‘격류’, 그것인지도 모릅니다.”(309쪽)

그는 책 앞머리에 놓은 자서(自序)에서 시인과 혁명가의 동질성을 지적하며 “시인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반항의 영혼”(27쪽)이라고 설파했는데, 문학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한국 시단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도 확인된다. “많은 시들의 숙달된 화법들은 거의 고뇌 없는 성형수술의 미모를 따르고 있다는 비판 앞에 있다… 게다가 여전히 닫힌 진영주의나 황당무계한 초월주의에 의한 도(道)의 수작들이 자아내는 주관의 성벽은 한국 시의 리얼리티에 요구되는 광의의 시적 대상들을 가로막는 것이다.”(120쪽)

고은 시인은 지난 20일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조국이 통일만 되면 내 나라를 떠나 민족을 잊고 싶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이민 선언을 한 것은 전혀 아니다. 누구도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통일, 이 미지의 것에 대해 기대를 던져본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통일은 단순히 민족이 하나가 된다는 차원을 넘어, 20세기의 역사적 잔재가 청산되면서 한국이 새로운 세계사의 문명적 기점이 되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기점은) “한낱 시인의 무식한 예측일지 몰라도 양도하고 싶지 않은 점(点)”이라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최근 심각한 국면을 맞은 북핵 문제에 대해 “핵 시설이 있는 채로 분단체제가 계속된다면 통일은 아주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 정부가 지원금 일부를 주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대응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겨레말큰사전이 남북한 분단 언어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미국 등 해외동포들의 모국어까지 한데 결집하려는 중요한 목표를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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