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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간국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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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간국을 먹으며

입력
2010.11.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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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시월에 집집마다 5대조 이상 조상 묘소에서 제사를 지낸다. 시사(時祀), 시제(時祭)라고도 하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묘사(墓祀)라 한다. 묘사에 할아버지 친형제 세 분과 사촌 할아버지, 모두 네 집안에서 아들, 손자 등이 모인다. 묘사는 네 집안이 매년 돌아가면서 지낸다. 비용은 공동으로 마련한다.

할아버지 3형제분이 아드님을 통해 만드신, 남자 재종간이 10명이다. 그 중 둘은 아직 혼인을 하지 못했다. 집안이 번창하지 못해 재실(齋室)을 마련하지 못하고 묘사는 6대조 할머니 묘소에서 지낸다. 그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밀양 산내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높고 험한 해발 1,241m의 가지산을 넘어 '엘도라도'를 찾아 양산으로 오셨다.

그 할머니가 밀양에 계속 남았다면 집안은 가난에 찌들어 절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는 우리 집안의 개척자였다. 할머니의 도전 정신으로 한 때 양산에서 상당한 부를 이뤘지만 당숙, 아버지 대에 이르러 대부분 다 잃어버렸다. 그 할머니의 두 아들인 5대조 할아버지 묘들도 일찍 유실되었다.

묘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눌 때 어머니는 꼭 생선대가리를 챙겨 오신다. 그 날 저녁 밥상엔 그 생선대가리로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끓인 '간국'이 오른다. 더운 간국을 먹으며 뜨거워져야 하는데 마음이 유민처럼 착잡하다. 가계(家系)가 간국 속 생선대가리 같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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