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10시 충남 당진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화입식(火入式) 행사장으로 들어선 기자의 눈에 원주형의 거대한 물체가 들어왔다. 한 눈에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큰 그 물체는 현대제철이 두 번째로 완공한 용광로인 제2고로(高爐)였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임직원들은 무엇인가를 이뤄냈다는 듯 하나 같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이 중요 인사들과 함께 행사장에 입장했고 화입식이 시작됐다.
화입식은 고로에 처음으로 불을 넣는 행사. 철강업계에서는 고로의 첫 심장 박동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국민의례 등 행사에 이어 지난 1월 가동을 시작한 1고로에서 채화한 성화가 입장했다. 불이 고로 앞에 정열해있던 정 회장에게 전달되자 장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성화가 들어갑니다."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정 회장은 철광석과 코크스(제철용 고체연료)가 가득 찬 대형 용광로에 불이 붙은 막대기를 밀어 넣었다. 화입이 무사히 마무리된 순간 행사장은 흩날리는 꽃가루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파묻혔다. 현대제철이 야심차게 건설한 제2고로가 생명을 얻은 순간이었다.
정 회장은 기념사에서"오늘은 지난 29개월간 현대제철 임직원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2고로에 최초의 불꽃을 심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향후 철강 소재 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공급하는 새로운 철강시대의 리더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고로는 용량이 5,250㎥, 높이가 110㎡ 달하는 대형 용광로로 1년에 400만톤의 철을 생산한다. 화입 후 26시간 정도 뒤인 24일 정오 무렵부터 본격적인 가동이 시작된다. 현대제철은 두달간의 시험가동을 거쳐 내년 1월이면 2고로에서 안정적 조업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2고로 준공에 따라 현대제철은 지난 1월 가동을 시작한 1고로에 이어 올해만 연산 800만톤의 제철용량을 새로 확보하게 됐다. 기존에 설치돼 있던 전기로까지 더하면 현대제철은 연산 2,000만톤 규모의 철을 생산하게 돼 세계 26위에서 단숨에 10위권 제철소로 부상하게 됐다. 생산제품도 철근 등 건자재 중심의 일반 봉형강류부터 자동차강판, 조선용 후판까지 총망라하게 됐다.
철강업계에서는 이번 2고로 가동을 계기로 현대제철이 또 한번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제철은 그 동안에도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 행보를 여러 차례 보여왔다. 현대제철은 1고로를 30개월만에 완공해 주위를 놀라게 한데 이어 2고로는 불과 29개월만에 완공했다.
공사기간이 당초 예상보다도 한달 이상 단축됐다. 1년 안에 생산용량을 800만톤이나 확대한 것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 앞서 1고로는 가동 후 첫 분기에 흑자를 달성하는 성과를 기록해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철광석 등 원료를 건물 내부에 보관하는 세계 최초의 밀폐식 제철원료 처리 시스템을 갖춰 오염물질을 대거 줄인 것도 현대제철만의 업적이다.
현대제철의 향후 목표는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가 되는 것. 자동차강판은 강도가 높으면서도 무게가 가벼워야 하며, 두께가 얇고 가공성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제철소가 생산해내는 제품 중 최고급 제품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현대ㆍ기아차, 현대하이스코 등 그룹 3개사와 함께 400여명의 석ㆍ박사급 연구인력을 투입해 신제품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3고로 건설도 추진된다. 현대제철은 2015년까지 3고로를 완공해 고로에서만 연산 1,200만톤 체제를 갖춘다는 계획 하에 현재 정부와 인ㆍ허가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은 "2004년 한보제철 인수 이후 6년여의 대장정이 일단락된데다가 현대제철이 세계 철강역사를 새로 쓰는 듯한 성공적 행보를 보이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고품질을 제품을 만들어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진=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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