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사진) 전 한은 총재가 퇴임 후 첫 강연에서“내년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펴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가가 지금보다 떨어지고 경기가 둔화함에 따라 기준금리를 정상화하는 데 장애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전 총재는 2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신한금융투자 리서치포럼에서 강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근원물가가 아직도 2%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보면 물가가 올해 최고점을 지나거나 이미 지났을 것”이라면서 “내년에 물가가 안정되고 만약 성장세도 둔화하면 정책당국자들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다들 기준금리의 방향(인상 또는 인하)에만 관심을 두는데, 실제로는 ‘수준’도 매우 중요하다”며, 설사 물가나 경기가 반대방향을 가리키더라도 현저하게 낮은 기준금리가 정상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직 시절 이 전 총재는 정상 금리 수준으로 금융위기 이전의 최저 수준인 신용카드 대란 후(3.25%)를 지목한 적 있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의 가장 큰 우려라고 1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이는 당장 폭발한다는 뜻이 아니다”면서 “만성적으로 한국 경제를 누르는 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짐을 갖고 있는 한 가계는 힘을 펼 수 없고, 부채가 과도하면 금리인상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펴는데도 어려움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와 장기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결과를 속단하기 이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도 1990년대 양적완화를 했지만 일본은행 스스로 성공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퇴임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이 전 총재의 강연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됐다. 500명이 정원인 63빌딩 3층 국제회의장에는 이 전 총재의 강연을 들으려는 금융계 인사와 신한금융투자 고객들로 꽉 차 300여석을 더 마련해야 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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