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친 22일 서울 삼성동 빌딩 방화사건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의 생명을 구한 시민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사건 당시 방화 피의자인 김모(49ㆍ사망)씨가 출입문 근처에서 시너를 뿌린 뒤 몸에 불을 붙여 사무실 안의 30여명이 나올 엄두를 못 낸 채 창 쪽으로만 피신해 있었다. 자칫 유독가스에 질식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바로 앞 건물에서 근무하다 동료로부터 화재소식을 접한 남기형(41)씨는 불길이 급히 번지는 것을 보고 무작정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은 각자 임무에 바쁜 나머지 사다리가 연결된 화재 건물의 창문에 바짝 붙어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 6명의 비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씨는 "살려달라는 소리가 정말 절실하게 들렸다. 그때는 워낙 다급해 다칠까 하는 걱정도 안 들었다. 무작정 사다리에 올랐다"고 말했다. 사다리에 오른 그는 준비해간 소화기로 창을 깨 유독가스를 최대한 밖으로 빼낸 뒤 시민들을 구출했다.
그는 "유리를 깨자 밖으로 나온 검은 연기는 잠깐 맡아도 지금까지 기침이 심할 만큼 독했는데, 당시 안에는 그 연기가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깼으면 안에 있던 6명의 목숨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화재 건물 뒤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박우순(50) 성영종합건설 소장과 협력업체 대표 송병훈(54)씨도 자신의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했다.
이들은 신축건물의 창문을 만들기 위해 뚫어놓은 가로 70㎝, 세로 130㎝의 공간을 통해 약 2m 떨어진 화재 건물로 넘어가 창을 깨고, 사람들을 다시 신축건물 현장으로 옮겼다. 2m 가량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가느다란 철봉 두 개를 나란히 놓아 만든 다리만 놓여 있어 이 곳을 지나가다 자칫 헛디딜 경우 3층에서 추락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용기를 내 10명을 구했다.
일반 시민이 먼저 인명구조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다리만 걸쳐놓고 인명구조를 미룬 소방당국의 늑장대응에 대한 비난도 일고 있다. 별도의 장비도 갖추지 못한 시민이 사다리를 올라가는 동안 단 한 명의 소방대원도 사다리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 건물의 직장인 이윤성(34)씨는 "구조 사다리가 연결된 뒤에 소방관들이 한동안 사다리에 오르지 않아 지켜보던 시민들이 '빨리 사람 먼저 구하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현장에서 많이 들렸다"며 "그러다가 남씨가 직접 올라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사다리가 펴지는 동안 소방대원은 소방호스를 연결하고, 일부는 건물 안 구조를 살피고 있었다"며 "대원들이 하던 일을 마치고 사다리에 오르기 전까지 짧은 시간 사이에 시민들이 용감한 행동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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