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최근 북한을 방문한 미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소장이 밝혔다.
헤커 소장은 20일(현지시간) CISAC 웹사이트에 올린 '북한 영변 핵시설' 방북 보고서에서 북한 관리들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핵무기를 억지력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비핵화의 조건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매우 강하게 언급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북미관계 개선의 모델로 2000년 체결된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거론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한 고위 인사'가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최근 사망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교차방문으로 이뤄진 북미 코뮈니케를 "문제 해결의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미 코뮈니케는 상호 적대의사 철회,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등 포괄적 관계개선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가 냉각돼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의 선 북미관계 개선 요구는 우라늄 농축 중단을 포함한 비핵화 조치가 6자회담 등 북미대화에 앞서 이뤄져야 한다는 한미의 입장에는 배치되는 것이다.
한편 미 핵전문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북한이 이번에 공개된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과는 별개의 원심분리기 설비를 제3의 장소에 구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과 폴 브레넌 수석연구원은 21일 "북한이 또 다른 우라늄 농축시설을 이미 건설했을 수 있다"며 "헤커 박사가 목격한 영변 원심분리기 시설은 이 농축시설에서 이전된 것이거나, 과거 건설 경험을 토대로 영변에 소규모 시설을 구축한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들은 "불능화 절차가 완료된 지난해 4월 당시에는 영변 지역에 원심분리기 설비 공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 지역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구축한 공장을 이토록 빨리 만들었다는 것은 이 공장이 북한의 첫 번째 원심분리기 설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헤커 소장도 보고서에서 "영변 시설과 같거나 더 큰 용량의 고농축 우라늄 시설이 별도의 장소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우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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