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주둔 도시의 상징으로 회자되던 동두천이 홍역을 앓고 있다.
동두천이 미군과 인연을 맺은 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군의 대규모 주둔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60년째. 시 전체 면적의 43.5%를 미군 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동두천은 미군 덕에 살아온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고 작은 미군 관련 사건들이 이어졌지만 동두천은 미군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미군 부대 쓰레기도 돈이 된다"고 할 정도로 지역 활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랬던 이곳에서 "전쟁을 불사하겠다", "기지를 틀어막자"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4년 국방부는 경기 북부지역 미군 기지들을 통폐합 해 2008년까지 평택지역으로 이전하기로 발표했다. 매향리, 직도 사격장 등을 둘러싼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 것도 이때부터다. 정부는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등을 공포해 국고지원을 약속했지만 이 곳 주민들은 불만을 표하며 추가 지원과 대책을 요구했다.
군사보호구역이나 미군 공여지 주변에서는 재산권 행사가 제한될 뿐 아니라 정상적인 도시개발이 이뤄질 수 없다. 동두천 역시 경기도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수도권 정비계획법상 개발 제한이 가해지고 상수원 규제, 그린벨트규제등 다양한 중복규제를 받아 왔다.
1만 5,000명이던 동두천 주둔 미군은 2004년 이라크 파병으로 급감해 5,000명 수준이다. 그 결과 광암동 캠프호비 주변 상가는 슬럼화 현상을 겪고 있다. 캠프케이시 앞 보산동 관광특구도 280개 점포 중 43개가 폐업한 상태. 8명의 가수를 고용하고 30년째 이곳에서 대형클럽을 운영해 온 박영호(59)씨는 "6개월째 적자 상태"라며 "관광특구에서 내년까지 버틸 수 있는 가게가 절반도 안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달 27일 동두천시 중앙로 일대에서 동두천지원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주도했던 한종갑(59) 범시민 대책위원장은 "동두천 팔아서 평택에 쏟아 붓는걸 누가 보고만 있겠냐"며 "그날 집회는 출정식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동두천시청 특별대책지역과 전흥식 팀장은"중앙(정부)에서 눈 하나 깜짝 안하면 시위 강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여기도 대추리처럼 일이 커질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미군은 한미동맹과 안보의 상징처럼 여겨왔다. 문제는 안보가 국가의 유지를 위해 중요하지만 그 혜택은 전 국민이 고루 누리는 반면, 그 부담은 특정지역에 집중된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너 차례 연기된 기지 이전 시기는 현재 빨라야 2016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군은 줄어드는데 기지만 남아있는 어정쩡한 상태다. 군사와 안보가 국가의 배타적 권한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소통 없는 정책은 적잖은 사회·경제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국민들은 갈등이 불씨에서 산불로 커져가는 모습을 수 차례 목격했다. 목소리 높여가는 동두천시민들의 표정에서 그러한 우려를 함께 읽을 수 있었다.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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