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염려해왔던 것이 현재화된 것이다.” 22일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자가 기자간담회에서 내놓은 반응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우리 정부가 알고 미국과 동조하던 부분”이라며 “지난해 우리 정부가 그랜드바겐(일괄 타결)을 제안한 배경 중 하나가 농축 우라늄이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예전에 미처 몰랐던 ‘놀랄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이미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제기됐던 만큼 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을 과소평가해 안일하게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8년 동안 현재 진행형이었던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팩트’에 대한 우리 정부의 판단은 대북관에 따라 제각각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HEU가 있다는 정보도 없고 구체적으로 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북한에 HEU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혀 정보 라인과 외교안보라인 간의 인식 차를 보여줬다.
이명박정부 들어 지난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선언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적극적 입장으로 바뀌긴 했다. 외교ㆍ국방 장관들도 “북한이 최소 1996년부터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무기화하는 것도 진행되고 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북한 외무성이 지난해 9월 우라늄 농축 실험 성공을 주장한 이후 4개월 가량 지난 뒤에야 나온 반응들이었다. 노무현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었다면 현정부는 북한이 으름장을 내놓은 뒤 한참 지나서야 이를 확인하는 수준인 셈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사실이 전해진 당일엔 “사실이라면”이라고 단서를 달았다가 하루 지나서야 “북한의 농축 활동을 사실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부는 북한의 우라늄 핵무기 개발 시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지라도 구체적으로 2,000여 개의 원심분리기 설치가 추진되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정부는 북한이 연간 2개의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 2,000여대를 보유했다는 사실에도 별반 새로운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쁜 행동이기 때문에 용인이 안 된다” “앞으로 북한의 행동을 보고 관련국 협의를 해보겠다” 등의 언급을 하는 등 북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사용했던 표현들만 반복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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