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시의 저작권에 대해 대부분 관대하다. 그건 시인들이 심성이 착하기 때문이다. 발표된 시의 재수록을 부탁하면 쉽게 동의를 한다. 나의 경우 전화가 와도 예, 메일이 와도 예, 즐거운 마음으로 동의를 한다. 그 대가로 책만 보내줘도 고맙다. 그런데 착한 시인을 바보 시인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최근 신문에 책 소개가 나왔는데 내 시가 인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책을 우편으로 받았는데 아무리 기억을 해도 사용 허락을 한 적이 없는 시들이었다. 저자의 연락처는 없고 책에 저작권은 출판사에만 있다고 되어 있었다. 마포 서교동에 있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 번호를 알고 있었는지 내가 누구라고 밝히기도 전에 사장이란 분이 내 이름을 먼저 부르며 친하게 인사를 했다. 자신을 시인이라 했다. 내 시가 사용된 이유를 묻자 연락처를 몰랐다고 했다. 세상에! 내 전화번호도 알고 내 주소도 알면서 몰랐다고 했다. 다른 시인들께 허락을 받고 사용했는가를 물었다.
황지우 시인 한 분만 연락처를 몰라 동의를 못 받고 실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함께 수록된 후배 시인 두 명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한 시인은 책조차 받지 못했다고 했다. 동의서 한 장이면 될 것을 단순한 절차조차 무시해버려 동업자가 착한 시인을 바보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바보가 화를 내면 더 무섭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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