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들은 3년 내에 해외기업 인수합병(M&A)에 대거 뛰어들 것이다. 전 세계 M&A시장은 새로운 시장과 신기술을 얻기 위해 거대 위안화 자본으로 무장한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기업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홍콩 국제투자자문회사 비마웨이ㆍ畢馬威 KPMG의‘세계 M&A시장 보고서’)”.
지난달 초 1달러로 미국 무디스그룹 산하 프라임 트레이딩서비스를 인수한 중국 최대 국영은행 중궈공상(中國工商)은행은 최근 피 인수회사 채무를 모두 갚는 조건으로 이 회사의 동남아지역 자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또 지난달 중궈와이하이(中國外海)석유공사는 미국 최대 석유회사 텍사코의 천연가스전 지분 34%를 취득하는 등 올 들어 5월까지만 해도 중국의 해외투자규모는 143억달러에 달했다.지난해에는 총 해외투자액이 무려 433억 달러였다. 중국기업들의 해외투자열기는 이렇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자바오(溫家寶)중국 총리는 지난해 7월 9명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1차 해외주재 외교사절 회의’에서 “중국은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을 중국 기업들의 해외 M&A 지원에 쓰겠다”고 공언했다. 원 총리는 중국기업들에 지원할 자금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정부가 자국기업들의 해외 M&A 지원을 공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중국은 자국 기업들의 적극적 해외기업 사냥을 도움으로써 외환 운용에서 달러 의존도를 낮춰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또 해외자원을 저가에 대량 확보할 수 있고 중국 기업들의 해외진출 확대와 첨단기술 확보를 추진할 수 있다. 다중 포석인 셈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전략적 사냥은 천연자원ㆍ에너지 분야 등 세계자원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SINOPECㆍ시노펙)와 중국해양석유공사(CNOOC)는 미국 4위 석유업체 마라톤오일이 보유한 앙골라 오일블록의 지분 20%를 매입했다. 앞서 시노펙은 스위스 석유회사 아닥스를 72억달러에 매입했으며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영국BP와 함께 이라크 루마일라 유전개발권을 확보했다. 중국 최대 풍력발전설비제조업체인 골드윈드는 최근 독일 벤시스 지분 70.8%를 4,100만유로에 인수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최근 발표한‘2010 중국의 글로벌투자 추적’보고서는 2005년 비해 중국 해외투자가 급속한 증가추세에 있음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과 홍콩기업들이 지난해 해외광산 인수와 투자에 사용한 금액이 130억달러(16조원)로 5년 전에 비해 100배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또 2004년까지 세계 원자재 기업 M&A시장에서의 중국 비중은 1%였는데 지난해 중국은 전체 M&A시장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보고서는 중국의 해외투자가 앞으로 남미와 아프리카, 러시아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중국해외투자의 특징에 대해 “중국이 원자재 확보에 집중하는 것은 세계의 공장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값싼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전 세계 구리의 33%, 비금속의 40%를 소비하고 세계강철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끝으로 “중국의 해외투자가 더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추세”라며 “향후 중국의 투자는 더 다양해지고 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중국의 투자 정치학
그리스에 이은 아일랜드 재정난으로 '유럽 위기설'이 한창인 요즘, 유럽에서 중국의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올 초부터 4억 달러 규모의 스페인 국채를 사들이는가 하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그리스 국채를 매입할 뜻을 밝혔고 대규모 사회간접자본투자도 약속했다. 이달 초 유럽순방에 나섰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포르투갈에서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중국이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고, 16일엔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유럽은 중국 외환 투자에 있어 중요한 시장이다"고 언급했다. 넉넉해진 외환보유고를 앞세워 위기에 빠진 유럽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교묘한 정치적 포석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IBT)는 19일 아일랜드 구제금융 전망에 대한 기사에서 "중국이 유럽의 '백마 탄 왕자'가 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의 월가와 다른, 매우 현실적인 도움을 주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BT는 특히 지난 10년 동안 중국과의 무역량이 6배 이상 급증한 아일랜드가 재정난에 빠진 지금, 유럽에서의 중국 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기회가 열렸다고 진단했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총리는 연초에 이미 "아일랜드는 중국에게 유럽 투자의 입구(Gateway)가 될 수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AFP통신은 유럽에서 중국 은행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8일 AFP는 "중궈공상은행이 세계 최고의 시장가치를 가진 유럽과 중동에 잇달아 지점을 내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중국은행들이 파리, 마드리드, 브뤼셀 등에 지점을 열면서 유럽투자 창구를 계속 넓힌다"고 보도했다.
최근 수뇌부를 앞세워 유럽에서 '우군 찾기'에 힘을 기울였던 중국은 이번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을 내세워 아프리카 시장 다지기에 전력하고 있다. 16일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앙골라, 보츠와나를 순방한 시 부주석은 시설 건설 협력과 각종 투자 약속으로 아프리카 붙들기에 공을 들였다.
중국에게 아프리카는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무대라기 보다, 자원확보를 위한 병참의 의미가 크다. 특히 최근 희토류 수출 논란에서 볼 수 있었듯이 국제무대에서 '자원무기'의 위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천연자원의 보고인 아프리카는 중국에게 매력만점의 시장임이 틀림없다. 16일 로이터통신은 "시 부주석이 남아공 등을 방문한 데에는 천연자원 확보는 물론, 급속히 성장하는 남아공에 중국의 동력을 더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로 전진해 가려는 중국의 희망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중국식 M&A방식
중국기업들의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은 늦어도 3년 후부터는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중국기업들은 브랜드와 기술력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경영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단계 중국 국유ㆍ민영기업들의 경영역량이나 위기관리 경험 등을 고려할 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한다. 개혁개방 20여년 만에 정부의 비호 속에 급성장한 중국기업들이 외국 피인수 기업과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기업이 해외기업 사냥에서 노리는 것은 피인수 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장기적 관점보다는 그 기업의 브랜드와 기술을 빌리겠다는 단기적 목적이 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홍콩 KPMG의 M&A전문 컨설턴트인 페어 리는 “미국이나 유럽에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피인수 기업 자체보다는 그 기업의 정보와 브랜드 기술을 매입하는데 관심이 높으며 이 같은 자산은 자신의 중국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자동차업체인 지리(吉利)는 지난해 8월 포드자동차의 계열사인 스웨덴의 볼보를 인수했다. 그러나 지리는 유럽이 아닌 중국에 볼보자동차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볼보 브랜드를 이용해 중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유럽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M&A이후 피인수 기업을 새로운 중국기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전략이다.
중국의 해외경영방식이란 중국식 기업운용방식을 고수하며 피인수기업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활용하는 ‘중국식 체용(體用)론’이 주류가 될 전망이다.베이징=장학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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