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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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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황정은'

입력
2010.11.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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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정은(34)씨는 지난 11일부터 일본 여행 중이다.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했던 첫 장편소설 를 대폭 손봐서 펴내고, 최근까지 5개월에 걸쳐 단편소설을 매달 한 편씩 쓰고 나니 원래 약한 몸에 무리가 와서 '올해 남은 날은 쉬자'는 마음으로 엔고를 무릅쓰고 결행한 여행이다.

휴대폰을 끈 채로 막내 동생(황씨는 세 자매의 장녀다), 친구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그와 이메일로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오사카와 교토를 거쳐 고베에 머물고 있었다. "헉, 죄송합니다. 느긋하게 메일 접속했다가 당황했어요. 사람 찾는 메일이 하룻밤 새 다섯 통이나." 기자 말고도 그를 애타게 찾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후 사흘에 걸쳐 그와 이메일로 문답을 주고 받았다. 그의 평온한 여행길에 불쑥 끼어든 듯해서 미안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_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첫 문학상 수상입니다. 소감이 어떤지요.

"기쁩니다. 열심히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_첫 장편 출간에 여러 편의 단편까지, 올해 어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한 성과인 듯합니다.

"활발했다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한 감이 있습니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소설을 썼고, 몸은 다시 뒤틀렸지만 쓰는 동안에 즐거웠습니다."

수상작 는 원고지 410매 분량이다. 단편소설(원고지 70~80매)보다 훨씬 길지만, 보통 원고지 1,000매가 넘는 장편소설보다는 짧다. 본심에서는 이 작품의 분량이 꽤 첨예한 논쟁거리가 됐다. "(경)장편인데도 단일한 상징과 알레고리에 지나치게 의존한 감이 있다"는 비판적 평가와 "분량상 중편소설이며 내용 또한 중단편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는 옹호론이 맞서는 한편으로, "이 소설의 장점은 전통적 의미의 장편(novel)이라는 관점에서는 포착하기 힘들다"는 절충적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해 황씨는 "소설 분량에 관해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딱히 를 장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이어 "소설에는 흔히들 '이야기성'이나 '서사'라고 말하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소신을 밝혔다.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어 다시 꺼내보게 되는 소설들은 대개 전체적인 줄거리가 이렇다, 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W G 제발트의 가 적당한 예입니다. 또 소설은 결국 '세계에 관한 고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고민이 반드시 어떤 이야기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로베르트 발저의 는 줄거리로 따지면 길게 이야기할 게 없지만 품고 있는 내용은 정말 독하고 분명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야기로 넘치는 작품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이야기'의 의미가 조금 더 넓어지고 넉넉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씨는 1995년 대학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그만뒀다. 그래도 전공이 불문학이었으니 문학에 대한 관심은 일찍부터 있었겠지 싶어 지난 여름 만났을 때 물어봤더니 웬걸, "풍물패에 가입해 장구에 미쳐 사느라 수업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장구를 꽤 잘 쳤다"며, 좀처럼 하지 않는 자랑(!)까지 했다.

이달 초 만났을 때 그는 "얼마 전부터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가야금 줄을 짚고 흔들며 꾸밈음을 내는 농현을 비롯, 그동안 배운 주법들을 소개하면서 그는 "가야금은 현악기이면서, 줄이 나무에 튕기며 소리를 내는 타악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타악기인 장구를 짧은 기간에 능숙하게 다루는 리듬감을 지닌 그인 만큼 가야금 연주도 잘하리라는 짐작과 함께, 에서 진경(珍景)을 이룬 운율이 넘실대는 문장들도 그 리듬감과 무관치 않을 듯싶었다. 그건 그렇고.

_대학 중퇴 후 2005년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까지 10년은 어떻게 보냈나요.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몇 년 동안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공백이었던 시기였습니다.(그 이상의 구체적 언급을 그는 꺼렸다) 좀 움직일 수 있게 된 무렵부터 아버지 사무실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세운상가 황 기사'로 통하는, 실력 있는 오디오 전문 수리 기사 황종진씨다) 건강해진 이후로는 이것저것 아르바이트(그중 하나는 한국일보 배달이었다고 한다)도 하고 묘한 단체의 사무일도 맡아보았고요."

_소설 습작은 언제부터 했나요. 소설가 이순원씨가 인터넷에서 진행한 창작 수업에도 참가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수업은 합평으로 진행됐는데, 2002년 여름부터 이듬해 말까지 1년 반 정도 참가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인터넷에 방이 열렸고 그곳에서 습작에 대한 합평이 있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이후로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딱히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당시 가장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배움이 소설 수업이었습니다. 컴퓨터를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수월했다고 말하기는 좀 곤란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_그게 문학 수업의 전부인가요.

"그 밖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네요.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뭔가 생각날 때마다 멈춰 쓰느라고 여기저기 많이 부딪혔던 기억이 납니다. 다섯 걸음 걷다가 멈추고 세 걸음 걷다가 멈추고…. 통행에 적잖이 방해됐을 거예요.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그 정도로 통행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_에 등장하는 오디오 수리 기사 '여씨 아저씨', 일상의 지난한 순간마다 모자로 변하는 단편소설 '모자'의 아버지 등에서 실제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버지는 내게 굉장히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덩어리랄까, 인간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분입니다. 예전에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세상에 (태어)난 놈 가운데 불쌍하지 않은 사람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내 안에 굉장히 깊이 가라앉아 있어요."

_소설가로서 각오를 듣고 싶군요.

"소설은 결국 '세계관의 미학적 표현'이라는 생각을 전보다 더 강하게 합니다. 미문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세계에 관한 시선이 문장을, 문체를,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보고 배우고 취향을 기르고 여러 가지 모순에 관해 더 고민하면서, 단단하되 딱딱하지 않은 코어(중심)를 갖추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력

▦1976년 서울 출생 ▦인천대 불문과 중퇴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2008), 경장편소설 (2010)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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