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다시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천안함 사태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인한 국제적 고립을 타개할 돌파구로 ‘벼랑끝 전술’의 종착역인 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드러난 북한의 움직임만 보면 핵 프로그램 재가동의 징후가 여럿 포착된다. 20일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원심분리기 수백 개를 공개하는가 하면, 16일에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관련 있는 경수로발전소를 건설 중이라는 미국 인사의 전언도 나왔다. 또 18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북한이 과거 두 차례 핵 실험을 했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새로운 갱도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두 핵무기 제조나 3차 핵 실험을 위한 준비 단계를 밟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핵 카드를 이용해 난관을 헤쳐온 북한의 전력도 한반도 핵 위기를 고조시키는 이유 중 하나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동결 조치로 조성된 금융제재 국면에서 1차 핵실험을 감행해 이듬해 ‘2ㆍ13 합의’를 이끌어냈고, 2009년 5월 단행된 2차 핵실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에 따른 체제 위기설을 일거에 잠재웠다.
북한의 이런 행태는 일단 북핵 6자회담 참여 의사 등 잇단 대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선(先) 비핵화 이행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시위 성격이 짙어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과거 북한이 실시한 두 차례 핵 실험도 금융제재 등 체제의 고삐를 쥐고 있는 미국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보상 여부를 떠보려는 탐색전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8일 “미국이 조선(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길을 택한다면 두 통로의 다른 한쪽(우라늄 농축)인 핵억제력 강화 노선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조선을 떠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선군(先軍)정치 노선을 계승한 후계자 김정은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외적 파급 효과가 큰 핵 개발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북한은 핵 카드로 미국과 치열한 기싸움과 하는 것과 달리 남북관계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강경과 유화를 배합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지난 9월 쌀 5,000톤 등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이 실시된 이후 적십자 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차원의 남북 교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을 논의하자며 당국간 회담을 제의하는 등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과거 경험을 통해 일방통행식의 강공책보다 미국의 동의가 필수적인 6자회담 문제와 한국의 입김이 강한 남북관계를 분리 대응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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