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옴부즈만 제도를 벤치마킹한 기업 호민관제도는 혁신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정부의 역점사업으로 지난해 7월 출범했다. 규제 개혁은 수많은 집단의 이해 조정과 기득권과의 다툼, 패러다임간의 가치 융합이므로 결코 쉬운 일이 될 수가 없다. 프레이저 등이 규제 개혁과 선진국 지수는 비례한다고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국가에서 실질적인 규제는 쉽게 개혁되지 않는 현실이다.
기업 호민관실이 독립적 운영을 하도록 법으로 명시한 이유도 미국 유럽 등의 옴부즈만이 특정부처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역학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해 얽힌 관련부처 많아
중소기업청이 직접 중소기업 규제를 개혁하는 경우를 상정해 보자.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 지원과 관련해 예산 인사 재무 노동 산업 등 여러 정부 부처와 이해가 얽혀 있다. 이 때문에 거창한 규제개혁 시도가 추진과정에서 동력을 상실하여 초라한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업 호민관실은 전체 인원 10여 명의 작은 조직이고, 다른 부처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 소신껏 규제 개혁을 위한 발굴, 조사, 연구 및 대안 건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네티즌의 원성이 많았던 '공인인증서 강제' 규제를 보자. 전 세계에 유례없는 이 규제는 인사를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금융을 책임지는 금융위원회와 치열한 가치 논쟁을 벌여야 하는 규제이기에 무려 10년간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의 규제개혁 정책의 초석인 '정부의 비보복 정책'도 정부부처를 총괄하는 총리실과의 갈등을 극복하고서야 통과될 수 있었다.
기업 호민관실이 특정 부처에 예속되어 있다면 이러한 규제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년 남짓한 기간에 공인인증서 강제 규제의 개선, 연대보증제도의 개선, 정부의 보복금지 도입 등 1,300여건의 규제 개선 성과를 이룬 것은 기업 호민관실의 노력에 못지않게 독립성 보장이 결정적인 힘이 됐다.
이러한 독립운영 보장에 의지해 '실용 정부'의 최대 개혁과제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ㆍ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거래 사례가 7월 2일부터 3주일 동안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어 7월 23일 호민관실 출범 1주년 세미나에서 20가지의 '공정사회로 가는 공정거래 대안'을 건의하였고, 이를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무 부처에서 절반 넘게 수용하여 9월 29일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회의에 반영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국가 의 지도력을 보여준 쾌거라고 평가한다.
이와 함께 지속가능한 대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합리적 대ㆍ중소기업 관행의 정착을 위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학회 및 경영학회와 공동으로 가칭 '호민 인덱스'를 개발, 11월 시범조사에 들어가려는 시점에 호민관실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했다.
개혁 한계 느껴 사임 결단
11월은 대ㆍ중소기업의 단가 협상 기간이어서 시범조사의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보고 그렇게 조사시기를 잡은 것이다. 공청회 개최와 시범조사를 보류하라는 요청까지는 조건부 로 수용했다. 그러나 급기야 실태조사 금지에 이른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는 기업 호민관의 독립적 업무수행과 혁신적 규제 개혁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업 호민관실의 독립은 지속가능한 규제 개혁의 필수조건이다. 독립성 확보를 위한 최후 수단이라는 생각에서 임기를 반 이상 남기고 사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송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기업 호민관실의 인사와 예산 독립, 규제 개혁의 고객인 중소기업인들아 참여하는 민관 합동 운영체제 등이 이룩되기 바란다. 이를 통해 기업 호민관제도가 거듭하기를 기대한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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