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개봉한 영화 ‘에이리언’은 세계 영화팬들에게 충격이었다. 인간을 종족 번식용 숙주로 이용하는 외계 생명체의 흉포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이에 맞서는 리플리 중위의 모습은 더욱 강렬했다. 여성을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묘사하던 할리우드의 관습을 깬 리플리 중위는 영화사의 한 지점을 차지하게 됐고, 리플리 역을 열연한 시고니 위버(61)는 강인한 여성을 상징하는 세계적 스타로 부상했다. 위버의 리플리가 있었기에 ‘할리우드 여전사’로 곧잘 불리는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 영화 출연도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스크린 밖에서도 위버는 ‘전사’다. 지구온난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저인망어업으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를 비판해온 환경운동가다. 자신의 영역에서 뚜렷한 성과를 일구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목청을 높이는 그의 모습은 세계 많은 여성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어왔다.
위버가 29, 30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는다. 전화 인터뷰로 미리 만난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 기간이 매우 짧다. 다시 찾을 것”이라고도 했다.
_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언가요.
“남편(영화감독 제임스 심슨)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자랐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재미 한국인이었어요. 한국 문화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한국은 관습적이지 않아요. 진취적이고 혁신적이죠.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문화를 찾는 건 매혹적인 일이에요.”
_성공한 여배우이자 환경운동가로서, 자신이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라 생각하는지요.
“배우로 처음 나섰을 때, 저는 몇몇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첫 작품을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했죠. 배우 부부인 흄 크로닌, 제시카 탠디는 저와 아주 친한 친구였고요. 자신에게 엄격하고 영화ㆍTVㆍ 무대 등 뭐든 했다 하면 훌륭한 예술을 내놨던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일한 것은 특권이에요. 그들 덕분에 배우가 진정 품위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직업임을 깨달았죠. 제가 역할 모델이라니, 과찬입니다.
저는 뉴욕에 아주 작아서 ‘벼룩극장’이라 불리는 극장을 설립해 15년 동안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매년 50명의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연극을 올리고 있죠. 저는 우리의 직업이 젊은 세대와 동등하게 일하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_배우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해줄 조언은 있나요.
“물론이죠. 우선 배우는 당신이 듣기 원하는 것처럼 휘황찬란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요. 잘 읽고 잘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좋은 교육을 받길 권합니다. 배우는 극본이나 시나리오를 많이 받는데 그것들을 매우 빨리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잘 먹고 운동도 해야 어느 기회든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일이 일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얼마나 작은 일인지는 개의치 마세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세요. 진정 인생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젊은 시절의 경험입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것의 한 부분이 되고자 하는 것, 그게 바로 흥분되는 일이죠.”
_스탠포드대와 예일대를 다닌 배우로도 유명한데요.
“제가 받은 교육은 놀라운 선물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연기를 하며 종종 제 역할을 수정해야 할 때마다 제가 받은 교육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여배우들은 여러 역할 중 4분의 1 정도 밖에 못 딴다. 우울하다’고 받아들이기보다 ‘난 내 능력만큼의 역할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남성 역할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을 종종 시도합니다. 여성은 자신의 상상력을 이용해야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자질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저는 남자 배우들이 하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해온 일들이 성별과 무관하다고 믿습니다. 저의 접근법과 관련 있을 뿐입니다. 남성 역할이냐 여성 역할이냐 걱정하지 않고 그저 특정 기획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_여배우에 대한 편견이 많은 한국에서 당신의 말은 더 의미가 있겠네요.
“한국 여배우들은 귀여운 소녀 같은 역할을 원하나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영화와는 달라서 놀랍군요. 한국 영화들은 과감합니다. 여성의 빼어난 연기 재능을 활용한다면 한국영화가 훨씬 흥미로워질 듯하군요. 굳이 관습적일 필요는 없어요. 흔들어버리세요! 저는 시작부터 관습과 부딪혀 왔어요. 많은 제작자들은 금발에 파란 눈동자를 지닌 5.2피트(약 158㎝) 키의 배우를 원했는데 저는 키가 6피트(약 183㎝)였으니까요. 그런데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등 미친 거나 다름없는 감독들이 ‘오, 흥미로운데. 내 영화에 (관습적이지 않은) 힘을 강조하고 싶어”라며 저를 캐스팅한 거죠. 여배우들은 진정 특별한 것을 가졌다고 믿어야 합니다. 여배우는 남자처럼 거칠고 광기 어린 연기를 할 수 없다고 보는 제작자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는 여성 파워죠. 제작자들이 의미 있는 영화를 원한다면 여성을 영화의 전면에, 중심부에 놓아야 합니다.”
_출연한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정말 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딱히 한 작품을 고르긴 불가능합니다. 영화보다 어떤 경험을 뽑아야 할 듯 하군요. 6개월 동안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고릴라들과 함께 ‘정글 속의 고릴라’를 찍었는데 참 환상적이었어요. 영화가 놀라운 점은 전혀 다른 문화 속 장소에 가서 일하고 꿈꾸지 못했던 것을 하게 된다는 거죠. 리안, 피터 위어, 제임스 카메론, 마이크 니콜스 등 명감독들과 일을 했다는 것도 저에겐 소중합니다.”
_서구 영화에 진출하려는 아시아 배우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일단 보다 많은 한국 영화인들과 일하길 원합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세요. 배우가 어떻게 보이느냐는 배우에게 달렸죠. ‘내가 여기 있다. 당신 영화에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나를 고용해라’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세요. 매우 도발적이어야 하죠. 자신을 믿으세요. 제작자가 “와, 대단한데. 어떻게 해야 저 배우를 쓰지?” 하고 우리 주변을 맴돌게 해야죠. 제작자들은 언제나 영화를 위해 무엇이 최상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것은 전세계에서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입니다.”
_환경운동가로서의 활동도 눈에 띕니다.
“여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환경에 관한 것입니다. 가정을 돌보고 장을 보는 것은 우리들, 여성이니까요. 아기를 낳으니 자연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책임도 큽니다. 우리는 기업인과는 많이 다른 개인적 방식으로 공기와 물, 음식을 염려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이런 문제와 좀 더 긴밀한 만큼 해결책도 선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남자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우선권을 가지고 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름다운 ‘어머니 자연’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여성이 가정과 일터에서 실천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고, 이를 통해 리더십과 우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김다예기자 kimdaye@koreatimes.co.kr
번역ㆍ정리=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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