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굴, 공개된 백석의 번역시들은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1902~1963), 러시아 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와 미하일 이사코프스키(1900~1973) 등 3명의 작품이다. 백석은 1947년께부터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분과위원으로 일했으며 이 시집 번역에는 월북 문인 김병욱, 김상오 등도 참여했다. 그러나 <나? 히크메트 시선집> 의 경우 전체 수록시 61편 중 38편을 백석이 옮기는 등 번역 작업을 주도했다. 나?>
백석이 번역한 작품들은 두 가지 성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한국전쟁 직후 체제 정비 기간이었던 당시 북한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 사회주의 혁명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시들이 눈에 띈다. '~하자, ~하라' 등 선동적인 구호가 사용된 작품들이다. '위대한 리별의 때는 왔고나 / 인민은 우리에게 총을 맡겼다 / 다시 보자 거리야 오막사리야- / 이른 새벽 우리는 진군을 하자'(이사코프스키 '다시 보자 거리야 오막사리야'에서),'나아가라! / 앞길에 가로 놓인 산도/ 쓰러버릴 수 있는 땅크처럼/ 나아가라!'(히크메트 '레닌의 돌아가심을 당하여'에서) 같은 시들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 갈래는 북한 체제의 요구와 차별되는 시들로, 학계는 이 시들을 더 주목하고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인', '사려' 등은 허무주의, 애수 등의 정조가 짙게 풍기는 작품이고 이사코프스키의 '우리 마을에 살아요'는 연시(戀詩)다.
윤영천 인하대 명예교수는 혁명성을 강조한 작품들은 일종의'할당'작업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백석이 러시아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레르몬토프를 번역한 것을 주목했다. 윤 교수는"당성을 중시하는 시대의 대세에 날카롭게 틈입해 레르몬토프 특유의 개인성을 부각시켰다"며 "백석 시의식의 기본적 지향과 맞아 떨어지는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제곤씨도 "작품을 스스로 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석이 번역한 시에서는 인간 내면의 울림과 서정적 목소리가 느껴진다"며 "도식적이고 교조적인 사회주의 문학 노선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백석의 문학적 지향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석은 1948년 10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끝으로 1957년 4월 동시'멧돼지'를 발표할 때까지 9년 동안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에 발굴된 번역시들은 이 기간에 나온 것으로, 해방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백석의 탁월한 한국어 조탁 능력을 보여준다. '호도나무 수풀이야 / 익은 호도를 채롱에 굽알지고 / 길섶에는 수물수물 / 나무 그림자는 져라'(이사코프스키 '살틀한 것들'에서), '그것은 한낮 즐거 익은 쭈그렁 과실 같아 / 우리의 입맛과 눈을 기쁘게 함이 없이 / 의지가지 없는 생내기로 꽃 속에 달려 있거니 / 그것들의 아름다운 때는- 곧 조락의 때'(레르몬토프 '사려'에서) 등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아동문학평론가인 장성유씨는 "원문을 확인해야겠지만 외국의 시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국문화시킨 상당히 뛰어난 번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백석의 아동문학관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도 수록돼 있다. 백석은 계급성, 교훈성을 강조하는 북한 아동문학계 주류 노선에 반감을 품었다. 아동의 생활상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형상화해야한다는 문학관을 갖고 있던 그는 1957년 북한 아동문학가인 이원우 등과 논쟁을 벌이다가 공개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새로 공개된 작품 중 백석이 번역한 히크메트의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장난질은- / 네 권리 / 그래 높은 담벽으로 / 기어 올라라'로 시작되는 동화풍의 작품이다. 장성유씨는 "작위적인 계몽성이 배제돼 있으며 아동생활 세계의 중심인 '장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백석이 자신의 아동문학관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발굴된 시집들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번역가'백석의 면모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던 백석은 1939년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 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분단 이후 북한에서 1947년 소련 소설가 콘스탄틴 씨모노프의 <낮과 밤> , 1955년 소련의 아동문학가 사무일 마르샤크의 <동화시집> 을 번역하는 등 1950년대 중반까지 번역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가 북한에서 번역한 작품은 많이 발굴되지 않아 그의 번역문학은 연구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동화시집> 낮과> 테스>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 무렵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온 백석은 사회주의체제에 심정적으로 공감해 월남하지 않았지만, 구호시가 난무하고 도식주의가 난무하는 북한 주류문학 노선에 반발심을 품었다"며 "1950년대 중후반까지 시를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시집들은 자신의 시적 불모 상태를 외국시 번역으로 우회하려했던 백석의 시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소련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 체제가 의도적으로 소개했던 러시아(소련) 작가 외에 백석이 제3세계 작가(터키 시인 히크메트)를 번역을 통해 연구하고 관찰했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됨으로써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에서 그의 위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백석의 삶과 문학
우수
나짐 히크메트(1927년작·백석 역)
바다로 내 돌아가고 싶어라
거울 같은 푸른물에
내 몸 비치여지라!
바다로 내 돌아가고 싶어라!
배들은 떠나가라 은빛 물결 아득한 먼 곳으로,
배들은 떠나가라, 떠나가라,
돛들은 바람에 붕글어
시름도 슬픔도 모르는 바람에 붕글어.
모르리라, 나도 한때 배에 오를지,
사람이란 죽는 운명
허허 바다 굽이치는 물결 속에
햇빛처럼 내 꺼지고 싶어라.
돌아가고 싶어라, 내 바다로!
바다로 내 돌아가고 싶어라!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해방 전까지 운치있는 모국어를 사용한 빼어난 서정시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시집 <사슴> (1935)은 고향인 평안북도 방언을 사용하면서 민족어의 아름다움과 모더니즘의 시적 형상화를 함께 성취한 시집으로 꼽힌다. 사슴>
백석이 함흥고보 교사 시절에 만난 인텔리 기생 자야(본명 김영한)와의 로맨스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자야는 훗날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으며 고 법정 스님에게 길상사를 시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제 말기 5년여의 만주생활을 끝내고 해방 후 고향 정주로 돌아간 그는 이후 북한에서 시인보다는 번역가, 동화작가로 활동했다. 백석은 전후 잠시 다양한 조류를 인정하던 북한 문단이 항일혁명문학 중심으로 경직되자 숙청됐고 1960년을 전후해 작가로서의 활동은 사실상 마감한다. 이후 압록강 인근에서 농장원 생활을 하다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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