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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엥겔스 평전' 마르크스에 가려진 '만년 조연' 엥겔스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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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엥겔스 평전' 마르크스에 가려진 '만년 조연' 엥겔스의 부활

입력
2010.11.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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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트럼 헌트 지음ㆍ이광일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680쪽ㆍ 3만2,000원.

막 3D 입체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랄까. 무대는 자본주의라는 괴물과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뒤엉켜 증기기관차처럼 폭주하던 19세기 유럽. 젊은 철학도들이 밤샘 취중 논쟁을 벌이는 베를린 맥주집, 매캐한 굴뚝 연기와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이 뒤범벅된 맨체스터 뒷골목, 혁명과 향락의 열기로 들끓던 ‘19세기의 수도’ 파리의 풍경이 눈 앞에서 헐떡이는 듯하다. 주인공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 조연은 엥겔스 가족과 칼 마르크스 가족, 보조출연자는 브루너 바우어, 미하일 바쿠닌, 생시몽, 푸리에, 프루동, 모제스 헤스 등 당대 난다 긴다 하던 혁명분자나 개혁가들. 직접 출연하지 않지만, 오마주로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는 헤겔이다.

(글항아리 발행)은 어쩌면 식상해져 버린 19세기 사회주의의 지적ㆍ정치적 흐름을 놀랍도록 역동적이고 섬세하고 흥미롭게 소생시킨다. 저자는 소장 역사학자로 올해 노동당 소속으로 영국 하원의원에 당선된 트리스트럼 헌트(36) 런던대 퀸 메리 칼리지 역사학부 교수.

지난해 출간된 이 책의 탁월한 역동성은, 으레 주연이어야 할 마르크스 대신 만년 조연 엥겔스를 발탁한 데 힘입은 것 같다. 도덕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주로 책상머리에 앉아 이론에 몰두했던 마르크스보다 부잣집 반항아이자 화려한 여성 편력의 멋쟁이, 기업 오너이자 혁명가라는 이중적 면모를 지녔던 엥겔스의 삶 자체가 더욱 드라마틱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엥겔스를 주인공으로 택한 저자의 실제 의도는 다른 데 있다. 1989년 사회주의 체제 몰락 이후 20여년이 지나면서 ‘자본주의 미래를 내다본 선각자’로서 부활한 마르크스에 비해 여전히 망각의 늪에 묻힌 엥겔스를 복권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황폐해진 기독교에서 예수를 구출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바울 비판까지 거슬러 올라가듯이, 마르크스를 건져내는 전략의 하나도 스탈린, 레닌으로 모자라 ‘엥겔스에게 덤터기 씌우기’였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심오한 휴머니즘적 철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천박한 환원주의로 기계화 도식화했다는 그간의 비판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멋들어진 솜씨와 감칠맛 나는 번역으로 되살아난 엥겔스는 ‘교조주의의 원조’라는 딱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과 혁명 대의에 투철한 불도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 인물이다. 면직업계 거물이었던 부친의 가업을 이어, 여자를 밝히고 여우사냥과 최고급 포도주를 즐기며 노동자를 관리하는 기업 경영주로 일하면서 동시에 자본가들의 노동 착취를 비판하는 혁명가라는 이중 생활을 한 엥겔스이지만 저자는 이를 ‘위선적’이라고 평가 절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엥겔스의 삶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모습”(583쪽)이라고 말한다. 독실한 개신교 경건주의 가정에서 태어난 엥겔스는 부친에 반항하며 당시 독일 청년을 사로잡았던 ‘기독교 비판’ ‘독일 낭만주의’ ‘청년 헤겔파’로 이어지는 지적 조류에 몸을 던졌다. 기성 관념과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 반항아의 전형이다. 부친 기업의 견습생으로 붙들려 간 영국 맨체스터는 당시로선 공장 굴뚝으로 가득 차 있던 자본주의의 최첨단 도시. 이곳의 경험은 엥겔스가 자본주의 현실에 눈을 뜨는 계기였는데, 이를테면 리얼리스트로 변신하는 단계다.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에 뛰어들었다가 만사 제치고 시골로 도피해 성애와 미식에 탐닉하는 엥겔스의 모습은 히피의 선구자 격이다. 2월혁명 실패 후 경제적 궁핍으로 부친의 기업을 맡긴 하지만, 그가 이후 마르크스 가족을 평생 먹여 살리는(정기적으로 그의 연봉의 절반 이상을 지원했다), 친구에 대한 무한 헌신도 그의 기이한 면모 중 하나다. 엥겔스가 그토록 하기 싫었던 공장주 노릇을 20년 간 한 것도 마르크스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마르크스의 이 이런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경영주로서 자본주의의 맨 얼굴을 그대로 봤던 엥겔스의 자료 제공과 조언에 크게 힘입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뗄 수 없는 한 몸이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경험적 토대가 바로 엥겔스가 누비고 다닌 현장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엥겔스의 모순적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지만, 그 밑바닥엔 짙은 애정이 가득하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그렇더라도 엥겔스의 후기 저작들, 예컨대 자연현상까지 무리하게 변증법을 끼워 맞춰 법칙화한 이나 등이 소비에트 교조주의의 단초가 된 것은 사실 아닌가. 굳이 이토록 엥겔스를 살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저자가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부활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의 휴머니즘 철학이 아니라 자본주의 비판이며 이를 위해선 엥겔스의 복권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의 마지막 초점도 엥겔스의 삶이 아니라 바로 엥겔스가 파헤친 ‘자본주의 현실’이다. “1989년 이후 우리가 살아온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유토피아가 이제 종교적 근본주의와 자유시장 만능주의라는 이중의 위협 앞에서 흔들리는 마당에 그(엥겔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더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584쪽)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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