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한국일보 편집국을 방문했다. 정국이 정국인지라 자연 검찰의 청목회 수사가 화제에 올랐다. 그 자리에서 안 대표는 여야 의원 11명에 대한 기습적인 압수수색이 과도했다고 지적하면서 검찰 권력이 너무 비대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중대범죄만 수사하고 일반사건에 대해선 공소권만 갖도록 해야 하며 압수수색도 최종 증거를 확보하는 차원으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 출입기자가 보도를 전제로 물어보자, 안 대표는 검찰의 수사권 분리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으로 물러섰지만, 검찰 권력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갖고 있었다.
다시 며칠 지나 검찰이 민주당 최규식, 강기정 의원의 관계자들을 긴급 체포하자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더러운 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했고 검찰을 향해선 "후안무치(厚顔無恥ㆍ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음)하다"고 비난했다.
여야 한 목소리 검찰 비난
여야가 손 대표의 이 대통령 비난을 놓고는 격하게 부딪치고 있지만 검찰을 향해서는 톤은 차이가 있지만 한 목소리를 내는 형국이다. 흔하지 않은 광경이다. 엇나가는 게 정상인 여야가 공조 아닌 공조를 하는 데는 후원금 문제로부터 정치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인식, 청목회 사건이 정경유착이나 사회적 거악(巨惡)은 아니라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여당 의원들조차 제기하는 검찰 수사의 형평성 논란도 겹쳐 있다.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한 기업으로부터 40억 원을 받았다는 진술이 있는데도 소환조사는 물론 출국금지조차 안돼 해외로 나갔고, 청와대 관계자가 대포폰까지 주면서 민간인 사찰의 '윗선'을 은폐하려 했는데도 재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치권을 자극하고 있다. 검찰이 정보 취합, 내사, 입건, 수사, 기소, 재판에서의 증거 제시, 구형 등의 권한을 모두 갖고 너무 편의적으로 어떤 사건은 중하게 다루고, 어떤 사건은 가볍게 다룬다는 것이 정치권의 불만이자 우려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드러난 명분의 부분이다. 내면적으로는 국회, 검찰, 청와대의 쟁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청목회 사건 하나만을 놓고 보면 청목회 후원금 수수가 위법이냐, 아니냐가 논쟁점이지만, C& 태광 한화 등 기업수사와 천신일 회장 수사, 대포폰 사건, 향후 사법개혁이 모두 맞물리면 정치적 승부의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검찰이 우위에 있을 것이다. 검찰은 청목회 후원금의 '대가성'을 문제 삼아 일부 의원들을 기소할 수도 있고, 기업수사에서 정치인 연루의혹을 더 깊이 파고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와대 역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검찰 수사가 필연적으로 정치권을 위축시켜 정국주도권 장악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승패를 예단할 수 없다. 우선 국회는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한 정치자금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검찰권 축소도 도모할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독자적 강제수사권, 경찰수사 지휘권, 자체 수사력, 수사종결권, 기소독점권을 모두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논리 아래 공직비리수사처 신설, 검ㆍ경 수사권 분리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검찰의 힘을 빼려 했다가 역공을 당해 실패했듯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여야의 위기의식이 절박하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가능성도 높다.
사정정국의 파장 꽤 길 듯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력 핵심부도 후폭풍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10만원 후원금마저 법의 심판대에 올린 엄정함을 권력 주변에도 적용하자는 압박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지세력이 막강했던 김영삼, 김대중 두 거인들조차 임기 말 자신의 아들들이 구속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던 정치사가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그래서 현 사정정국의 상처가 깊고 넓을수록 그 여운과 파장도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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